배우 김영철 씨가
TV 프로그램 ‘동네 한 바퀴’에서
어느 할머니에게
-어머님 내가 누군지 아세요?
물으니
-궁예!
오늘도 그는 또 다른 골목
오래된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내딛는 발자국마다 함께 어우러져
엄니가 되고 아들이 된다
부모님과 저녁을 먹다 말고
수저를 놓으면서
뜬금없이
-엄니 내가 누군지 알어유?
따라 물었더니만
-왕건!
<시 감상>
양문규 시인이 9년 만에 펴낸 『엄니 꽃밭』을 읽다가 문득 이 시 앞에서 마치 나그네가 길을 멈추고 낯선 풍경을 바라보듯이 머물렀다.
한때 우리 사회에 ‘이모’라는 호칭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나이 든 분을 ‘어머님’ 혹은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배우 김영철 씨가” TV 프로그램에서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때 ‘어머님’은 사회적 관계를 이르는 보통명사로 기능한다.
한편 이러한 일반적인 언어 풍속 너머에 여전히 ‘엄니’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이 시의 주체(화자, 나)처럼. 이때 ‘엄니’는 주체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고유한 특성으로 존재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조금 촌스럽기조차 한 ‘엄니’가 새롭고 다감한 언술로 느껴지기도 한다. “궁예!”라고 말하는 ‘어머님(1연)’과 “왕건!”이라고 말하는 ‘엄니(3연)’의 마음에 비친 서로 다른 이미지만큼.
사실 이런 시는 시시콜콜 따지며 해석의 사족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 그저 시어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가 전하는 진실이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넘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쉽게 읽히는 시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건 아니다. 깊이는 어려움이나 쉬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된 시(좋은 시)와 서투른 시의 차이다.
시는 삶의 풍경이며 마음에서 솟아나는 울림이다. 시를 읽는 즐거움이란 우리 안에 잠자는 시심(詩心)을 깨워 시원(始原)의 진실을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일 듯싶다. ‘엄니’가 일궈 낸 꽃밭을 걷는 시인처럼. 꽃이 ‘엄니’가 되고, 엄니가 꽃이 돼 핀 꽃의 나라로.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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