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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밖으로 나온 미술…작가의 상상은 필름이 된다

입력 2026. 05. 14   16:26
업데이트 2026. 05. 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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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선 넘은 미술 ⑤ 영화

정지 이미지 아닌 시간으로 흐르는 영상 작품들
영화관처럼 미술관 안에서 다양한 형식 상영하고
영상·사운드 교차해 실험적인 영상 언어로 제작
경계 허물어진 예술, 다양성 넘어 새로운 경험 열어

홍진원 감독의 ‘오, 발렌타인’ 포스터. 시네마달 제공
홍진원 감독의 ‘오, 발렌타인’ 포스터. 시네마달 제공


‘우리는 늘 선을 넘지(Beyond the Frame)’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막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전 세계 영화인과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 속에 지난달 종료됐다.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기존의 틀을 깨는 영화를 소개하며 확장과 혁신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영화인을 넘어 예술인의 국제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특히 올해의 슬로건 속에 담긴 ‘선을 넘은 영화’, 즉 프레임 밖으로 나온 영화는 마치 수많은 경계를 초월한 영화의 확장을 의미하는 듯하다. 미술이 경계를 넘어 확장했듯 영화 또한 새로운 기술, 매체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언어 형식의 실험을 추구하며 프레임 너머 다양한 장르와 교차한다. 영화의 상업성보다 자유롭고 실험적인 표현과 도전적인 아이디어에 주목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의 주제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경계 없는 상상력과 다른 예술 간 융합을 시도하고자 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예술 간 경계가 사라지고 융합이 시도되면서 미술과 영화의 관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영화와 미술은 눈으로 보는 것, 즉 시각문화의 일부로서 보이는 이미지를 통해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관객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오랜 과거부터 미술은 영화 속에 등장하곤 했는데 영화에서 미술은 소재가 되기도 하고 시각적 완성도를 더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기도 했다. 인물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처럼 미술 혹은 미술가를 소재로 한 영화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술 작품처럼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상징하며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여러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미술상을 둬 미술감독에게 시상하는 것처럼 영화 속에 설계된 미적 장치들은 영화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하는 동시에 감각적인 무대를 재현한다. 미술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영화 포스터 또한 하나의 작품이 돼 때로 전시를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미술관 공간과 전시에서도 영화 형식의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회화, 조각 등 미술관에서 볼 수 있었던 전통적 매체를 넘어 시간을 기반으로 한 영상 작품이 전시된다. 정지된 이미지가 아닌 시간성을 지닌 영상 작품이 비디오 아트, 무빙 이미지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영화관 속 영화처럼 미술관에서 상영되는 것이다. 전시를 통해 소개되는 영상들은 영화관처럼 정해진 시간에 입장해 관람을 완료하고 퇴장하기보다 좀 더 자유로운 관람 형식을 갖고 있다. 또한 한편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흘러가는 방식 혹은 기승전결 같은 기존 틀을 깬 감각적 방식의 영상 등 다양한 형식의 영상들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와 YBA’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미언 허스트와 YBA’ 포스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미술관 속에 갖춰진 영상 전용 공간과 ‘필름 앤 비디오’라는 프로그램은 밀접해진 미술과 영화의 관계를 더 잘 보여준다. 1960~1970년대 비디오 아트의 흐름이 미술계 안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며, 확장된 미술 언어로서 영상 작품을 소개할 공간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미술관은 기존 유통 방식으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상영하고 영화와 미술의 관계를 조명하는 역할을 하고자 영상관과 필름 앤 비디오 프로그램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미술관 내 영상관을 조성해 꾸준히 필름 앤 비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 서울관을 개관하며 동시대 미술에서 영상 작품의 위상 강화를 반영한 영상관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상업 영화관이나 OTT에서는 볼 수 없던 다양한 영화와 미디어 작품들을 소개하고 관객의 시각 경험을 확장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필름 앤 비디오에서는 기획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 ‘데이미언 허스트와 YBA’를 통해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소개한다. 쉽게 볼 수 없던 예술 영상들을 접하며 전시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와 함께 확장된 영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장뿐만 아니라 공연장과 도서관 등 여러 문화시설을 운영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한 ‘ACC 필름 앤 비디오-아시아의 장치들(2026.3.19~9.27)’이라는 제목의 ‘영화 전시’를 진행 중이다. 개관 이후부터 수집해 온 아시아의 실험영화와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전시 형식으로 소개하며 영화와 미술이 만나는 지점과 흐름을 짚는다.

특히 이 전시에서는 1970년대 한국 최초의 여성 실험영화 집단 ‘카이두 클럽’을 이끌었던 한국 실험영화의 개척자 한옥희 감독의 미공개 필름을 복원해 최초 공개한다. 화이트 큐브와 블랙박스가 묘하게 어우러진 전시는 미술과 영화 사이에 놓인 실험영화를 통해 단순한 상영을 넘어 새로운 예술적 언어를 조명한다.

전시에 참여한 영화감독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미술관 전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름들이 눈에 띈다. 그중 특히 영화감독이면서 영상 작가로 활동 중인 홍진훤 작가는 지난 3월 ‘오, 발렌타인’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며 영화계와 미술계를 넘나드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2004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로 기념되는 날에 분신을 감행한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소재로 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전통적인 영화 문법을 벗어나 두 개의 영상과 사운드를 교차하는 실험적 영상 언어 형식을 영화에 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홍진훤은 현대미술 작가로서 미술관 전시를 통해 더 일찍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역량 있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선정, 지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6’ 후원 작가로 선정돼 올 7월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전시를 통해 작가가 오랜 시간 품어온 주제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내며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넘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작업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의 경계를 확장하는 현대미술 작가, 영화감독들의 작업은 이제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중적인 영화가 있는 한편 새로운 예술적 시도로 소수의 관객에게 다가가는 영화도 있다. 또한 시간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영화도 있는 한편 감각적인 이미지와 장면들의 나열을 통해 미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영화도 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상업성을 포기한 실험적 방식의 영화만이 미술과 접점을 가진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와 미술은 ‘이야기’라는 공통점, 특히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펼쳐놓고 보는 사람에게 생각과 질문의 시간을 던지는 영화적 상상력, 그리고 미술적 상상력은 보는 장소와 형식의 다양성을 넘어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열어주는 선 넘은 예술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필자 김유진은 공공미술에 대한 논문을 썼고, 문화라는 전체적 맥락 안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예술을 연구한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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