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정덕현의 페르소나

보인 적 없던 눈빛..낯설어서 더 서늘한 탐욕의 투영

입력 2026. 05. 13   16:56
업데이트 2026. 05. 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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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박보영…뽀블리는 가라, 독기 품은 그녀의 변신 

오래 간직하던 사랑스러운 이미지 지우고 데뷔 첫 범죄스릴러에 도전
‘정신병동에도…’ ‘미지의 서울’ 거쳐 차근히 드러내온 다면적 얼굴들
‘골드랜드’서 욕망·독기 가득한 모습까지 확장…한계 없는 배우로 성장


“박보영은 지치고 무너져 가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임해 줬다. 욕망의 민낯을 내보이는 연기를 펼친 용기가 대단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골드랜드’의 김성훈 감독은 작품의 주인공 ‘김희주’ 역할을 맡은 박보영을 이렇게 평했다. 사실 이러한 박보영의 연기 평가는 어딘가 새롭다. 그녀에게 오래도록 드리워져 왔던 이른바 ‘뽀블리’ 이미지와는 너무나 상반된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골드랜드’를 보면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박보영은 자신의 숨겨진 욕망의 밑바닥을 꺼내 놓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과감한 변신을 보여 주려는 모습은 아니다. 그녀는 서서히 변화한다. 1500억 원의 금괴 앞에서.

‘골드랜드’에서 박보영이 맡은 김희주는 평범해 보이는 공항세관 보안검사요원이다. 그 평범함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그녀는 어려서부터 불우하고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왔다. 불행한 삶까지 물려준 엄마 ‘여선옥’(문정희 분)은 김희주의 ‘저당 잡힌 삶’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대변해 주는 인물이다. 엄마는 전당포 사장과 결혼했지만, 그로 인해 김희주와 그녀의 엄마는 전당포에 맡겨진 물건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불우한 삶을 견디며 이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평범한 행복을 꿈꾸던 그녀는 바로 그 남자가 품은 엇나간 욕망으로 인해 ‘금빛 유혹’의 세계에 빠져든다. 1500억 원의 금괴를 노리는 저마다의 탐욕스러운 인간 군상 속에서 그녀 역시 독기 가득한 얼굴을 꺼내 놓는다.

“감독님이 나를 봤을 때 금괴를 주인에게 돌려줄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고 했어요.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예상 밖의 선택을 할 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질 거라는 감독님 말씀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제작발표회에서 박보영이 얘기했던 것처럼 그녀의 변신은 의외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저 착해 보이기만 했던 배우가 ‘생존’과 ‘탐욕’을 꺼내 놓는 순간 우리가 발견하는 건 대중의 기대 안에 묶여 있던 이미지를 깨고 나오는 인간 박보영에 대한 공감이어서다.

이번 작품은 실제로 박보영의 데뷔 후 첫 범죄스릴러 도전작이기도 하다. 주로 감정의 깊이를 드러내는 연기를 해 왔던 박보영은 이 작품에선 처절한 액션이 담긴 연기를 선보였다. 금괴를 지키기 위해 삽질을 하고 차량 추격전을 벌이며 밀수 조직원들과 날것의 몸싸움을 벌이는 등의 거침없는 액션을 소화해 낸 것이다.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도 액션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판타지라면 이 작품의 액션은 현실감 넘치는 생존의 처절함이 담겨 있다. 게다가 독기 어린 눈빛은 지금껏 봐 왔던 박보영과는 너무나 다른 서늘함으로 다가온다. 평범했던 보안검사요원이 점점 생존의 위기에 몰려 변해 가는 모습에서 ‘뽀블리’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박보영의 연기 변신 욕망은 최근 들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폐허가 된 도시에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과속스캔들’과 ‘늑대소년’ 등을 거치며 구축돼 왔던 ‘사랑스러움’의 틀을 깨는 파격처럼 보이고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와 ‘미지의 서울’을 거치면서 그녀는 그저 귀여운 이미지의 연예인이 아니라 다면적인 얼굴을 언제든 꺼내 놓을 수 있는 베테랑 배우의 면면을 드러낸다. 

특히 유미지와 유미래라는 쌍둥이가 서로 역할을 바꿔 살아 봄으로써 상대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미지의 서울’에서 박보영은 1인 4역을 해내는 놀라운 성취를 보여 주기도 했다. 미지와 미래는 물론 미지 역할을 하는 미래, 미래 역할을 하는 미지의 네 얼굴을 그녀는 자유자재로 꺼냈다. 이제 그녀가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완전히 객관화해 통제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는 걸 이 도전적인 작품의 연기는 보여 줬다.

박보영의 최근 연기 변신은 이미지 탈피라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현재 치열한 경쟁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한국 사회는 완벽하게 선한 주인공보다 도덕적 결함이 있더라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에게서 더 크게 공감한다. 그래서 현실에 철저히 무너진 인물의 회복(미지의 서울)을 연기하고, 그 현실에서 끝내 살아남으려는 독기(골드랜드)를 그녀는 연기한다. 그것이 현재의 현실과 공명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저 밝고 착하게만 보였던 뽀블리는 없다. 그녀의 연기 변신은 따뜻함과 선함, 밝음을 노래하던 소녀가 ‘냉혹한 생존’의 세계까지 들어오는 연기 영역의 확장을 보여 준다. 다시 뽀블리로 돌아가는 역할을 맡게 될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도 과거와는 다른 성숙한 뽀블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제 더 이상 대중 역시 그녀에게서 언제나 웃고, 예의 바르고, 사랑스럽기만을 기대하진 않을 터. ‘골드랜드’에서의 파토스적 욕망 표출로 그녀의 다면적인 얼굴을 우리가 이미 목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박보영의 연기 스펙트럼의 확장은 현재의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요구하는 ‘강력하고 입체적인 여성 서사’에도 맞는 행보다. 세상의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거기에 맞는 새로운 얼굴을 요구한다. 현실이 달라졌다면 그 현실에 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몰랐던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점점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박보영의 얼굴은 우리에게 그걸 보여 주고 있다. 그저 편안한 과거의 틀에만 머물지 말고 현재의 변화에 반응하며 알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라고. ‘미지의 서울’의 대사 그대로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가자!” 사진=디즈니+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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