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께서 설하신 법문을 집성한 『잡아함경』에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흥미로운 비유가 등장한다. 거친 말을 길들이는 촌장이 성자(聖者) 석가모니를 찾아와 그 기술을 묻자 이렇게 답한다. 첫째는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고, 둘째는 엄하게 다루는 것이며, 셋째는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에 촌장이 “만약 그 3가지 방법으로도 길들지 않으면 어찌합니까?”라고 묻자 성자는 “나 또한 그를 죽여 버린다”고 답해 좌중을 놀라게 한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해치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다. 더 이상 가르침을 전하지 않고, 훈계하거나 대화하지 않으며 방치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이에게는 그 어떤 귀한 가르침도 무용지물임을 역설한 엄중한 경고다. 배움의 문이 닫힌 삶이야말로 인격적으로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통찰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공자의 일화와 궤를 같이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길을 가던 중 길가에서 용변을 보는 이를 발견하고 제자를 시켜 엄히 꾸짖어 돌려보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다 이번엔 길 한가운데서 당당하게 용변을 보는 이를 마주한다. 제자들이 아까처럼 혼낼 준비를 하자 공자는 “저 사람은 피해 가자”며 제자들을 만류했다. 의아해하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가에서 변을 보는 이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알기에 가르칠 수 있지만, 길 한가운데서 그러는 이는 수치심조차 없는 자이니 가르칠 도리가 없다.”
두 성현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가치는 ‘양심(良心)’이다. 양심이란 ‘좋고 어진 마음’을 의미한다. 사전적으로는 선악을 판단하고 선을 명령하며 악을 물리치는 도덕적 의식을 이른다. 우리는 흔히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 힘이나 사회적 지위에 의존하곤 한다. 하지만 고전은 진정한 자기보호가 안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역설한다.
군 조직이라는 특수한 체계 안에서 양심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요리사에게는 정직한 조리가, 기자에게는 사실에 입각한 보도가 양심의 발현이듯이 군인에게 양심은 ‘군인본분(軍人本分)’의 완수와 직결된다. 양심은 교육을 통해 함양된다. 특히 제복을 입은 우리에게는 지위에 걸맞은 행동과 태도를 요구하는 ‘사회적 자아’로서 내면에 깊이 새겨야 한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양심을 온전히 지키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개인의 이익이나 순간의 안락을 위해 양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곤 한다.
나이가 들고 소위 ‘세상 사는 법’을 익혀 가면서 어느샌가 양심이라는 단어와 멀어지고 있진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한다. 지위가 높아지고 경험이 쌓일수록 양심도 함께 깊어져야 마땅하지만, 도리어 영악함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마음이 병들어 신음하는 사회적 현상도 결국 내면의 파수꾼인 양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나를 지키는 방패는 큰돈을 들인 경호원도, 열렬히 지지하는 군중도 아니다. 금강석보다 단단하게 벼려진 양심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호신책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양심의 기준을 바로 세울 때 비로소 가면 뒤에 숨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군복을 입은 우리에게 양심은 전우를 보호하고 승리를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다. 우리 모두의 선한 마음이 모여 군 공동체를 환하게 물들이고, 각자 내면에 가장 단단한 방패 하나씩을 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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