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두 발로 만나는 국가유산

K컬처의 빛과 향으로… 천년의 숨결이 피어오른다

노성수

입력 2026. 05. 12   17:36
업데이트 2026. 05. 12   17:47
0 댓글

국방일보-국가유산청이 함께하는 ‘두 발로 만나는 국가유산’
마음을 울리는 한국의 미 - 백제 고도의 길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은…
무령왕릉·공산성·낙화암 등 찬란한 문화 꽃피웠던 백제로 시간여행
1500년 전 유물·예술 한눈에…금동대향로 공예미·정림사지 오층석탑 위용 확인
장인 손끝·안목에서 시작된 문화의 힘… 세계 속 K콘텐츠 뿌리 찾아

전 세계인이 우리가 만든 음악과 드라마, 영화, 소설을 보고 들으며 열광하는 시대다. 이제 세계적 권위의 음악 및 영화 시상식에서 ‘K콘텐츠’가 주목받고, 우리 아티스트들이 국빈급 대우를 받으며 세계를 누비는 게 일상이 됐다. 이토록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는 ‘K컬처의 뿌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반도 중서부에서 찬란한 고대문화를 꽃피웠던 백제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던 그곳.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을 따라 품격 있는 문화를 간직한 ‘백제 고도의 길’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글=노성수/사진=김태형 기자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대향로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향로는 받침, 몸체, 뚜껑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받침에는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용, 몸체엔 활짝 핀 연꽃, 뚜껑에는 겹겹이 솟은 산봉우리들이 표현돼 있다. 1993년 왕실 사찰터 진흙 속에서 출토돼 기적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대향로관에 전시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향로는 받침, 몸체, 뚜껑의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받침에는 물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용, 몸체엔 활짝 핀 연꽃, 뚜껑에는 겹겹이 솟은 산봉우리들이 표현돼 있다. 1993년 왕실 사찰터 진흙 속에서 출토돼 기적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충남 공주·부여 지역 백제 유산을 따라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660년 멸망하기까지 678년간 존속했던 고대국가다. 일찍이 수도 한성(서울)을 중심으로 주변국들과 직접 교류하며 선진문화를 받아들였고, 수준 높은 고유문화를 향유한 문화강국이었다. 하지만 웅진(공주)-사비(부여)로 도읍을 천도하는 과정을 겪고도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백제 고도의 길’ 방문은 옛 수도였던 충남 공주·부여 지역의 백제 대표 유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명명된 이곳은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먼저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여 만에 ‘역사의 땅’ 공주에 발을 내디뎠다. 이곳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려 구도심에 다다르자 백제 중흥의 중심인물인 제25대 왕 무령왕(461~523)의 거대한 동상이 기자를 맞았다.


공주 무령왕릉.
공주 무령왕릉.


공주 무령왕릉·왕릉원…백제 왕이 잠든 곳

백제는 고구려에 의해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수도를 급히 웅진으로 옮겼다. 하지만 혼란은 거듭됐다. 이 시기에 즉위한 무령왕은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을 이뤄 내며 백제 중흥의 기반을 마련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무령왕은 키가 8척이요, 그림 같았으며 너그럽고 인자해 백성들이 잘 따랐다”고 한다. 황금빛의 거대한 무령왕 동상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국가유산 방문코스 거점에는 빠져 있지만 무령왕이 잠든 왕릉부터 찾기로 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 웅진기 대표적인 왕과 왕실의 무덤이다. 특히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을 알 수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국립공주박물관 내 전시된 백제 유물.
국립공주박물관 내 전시된 백제 유물.


국립공주박물관…찬란한 문화가 한눈에

무령왕릉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이다. 1971년 송산리 고분군 배수시설 공사 중 인부의 삽자루에 딱딱한 물체가 닿았던 것. 마음을 졸이며 조심스레 그쪽을 파 내려가던 중 가지런히 쌓인 벽돌들이 나타나면서 1500년 전 백제의 문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관꾸미개, 둥근고리큰칼 등 108종 4600여 점의 유물도 함께 출토됐다. 무령왕릉 전시관 내에 벽돌로 만든 묘실에 들어서자 엄숙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은 것도 잠시, 정교하게 아치형으로 설계된 무령왕릉의 축조기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령왕릉을 나와 숲길을 걷다 보면 국립공주박물관이 보인다. 무령왕의 생애와 업적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무령왕의 머리 부분에서 발견된 관꾸미개를 비롯해 허리 부분에서 출토된 은허리띠 등 눈부신 유물들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공주 공산성.
공주 공산성.


공주 공산성…금강·능선 따라 쌓은 천연 요새

거침없이 내달리던 백제의 기상을 더 느껴 보고자 공주 공산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산성은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뒤 웅진도성 안에 있었던 왕성이다. 북쪽으로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아 천연의 요새로 불릴 만하다. 성벽 전체 길이만 2660m에 달한다니 그 규모에 또 한 번 놀랐다. 538년(성왕 16년)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백제의 왕성이었던 공산성은 조선시대까지 지방행정의 중심지였다. 실제로 성안에는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를 비롯해 임류각과 연지 등 백제왕궁 관련 유적 등이 남아 있다. 구간이 다소 길긴 하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때는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성곽길을 쉬엄쉬엄 걷기를 추천한다.


공주 마곡사.
공주 마곡사.


공주 마곡사…봄이 가장 아름다운 ‘춘마곡’

일제강점기였던 1933년에 지어진 금강철교를 비롯해 수려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와 완벽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공산성 인근엔 우리나라 최대 밤 주산지답게 밤을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 입안의 행복도 함께 느낄 수 있다.

눈과 입을 즐겁게 채운 뒤 이번엔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자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공주 마곡사를 찾았다. 마곡사는 100여 개에 이르는 충남·대전·세종 지역 조계종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다. ‘춘(春)마곡’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봄이 가장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마곡사에 봄의 절정에 맞춰 방문한 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마곡사로 들어서기 위해선 누구나 ‘해탈문’을 지나야 한다. 이 문을 지나면 속세에서 벗어나 불교세계에 들어가며 해탈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설명에 마음이 경건해졌다.


부여 부소산성 내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마강.
부여 부소산성 내 낙화암에서 바라본 백마강.


부여 부소산성…도성을 방어하는 핵심

백제 유산은 아니지만 사찰 마당에 자리한 마곡사 오층석탑도 눈길을 끈다. 고려 말기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머리 장식이 특징으로 마곡사의 고요한 정취를 완성시킨다.

다음 날에는 부지런히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의 중심을 이룬 부여 부소산성으로 향했다. 웅진이 국가 위기상황에서 급히 이전해 지어진 도시라면 사비는 치밀하게 설계된 수도였다.

특히 부소산성은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 시설로, 군창지와 사자루의 산봉우리를 머리띠 두르듯이 쌓은 산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성이 혼합된 형태를 띤다.


낙화암…백마강 ‘삼천궁녀 전설’ 깃들어

부소산성을 찾은 이라면 무조건 방문하는 곳이 낙화암이다.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서 있는 이 바위는 어떻게 유명해졌을까.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할 때 궁인들이 화를 피하지 못할 줄 알고 남의 손에 운명을 다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삼천궁녀의 전설’이 깃든 낙화암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해 다소 숨이 찬다. 어쩌면 삶의 마침표를 스스로 정할 운명에 놓였던 궁녀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떠오른 탓도 있었으리라. 낙화암 절벽 끝에 다다라 백마강을 바라보자 아찔한 느낌에 다리까지 휘청였다.

‘백제 고도의 길’ 다음 목적지는 백제의 가장 중요한 사찰 정림사지로 정했다. 정림사지는 백제 사비도성 중심지에 자리 잡은 사찰터다. 백제의 대표적인 사찰은 아쉽게도 터만 남았지만, 한가운데 있는 국보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백제의 위용을 느끼게 한다.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부여 답사의 하이라이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부여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멀리서 보면 아주 왜소해 보이지만 앞으로 다가갈수록 자못 웅장한 규모도 느껴지고 저절로 멋지다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고 했던 말이 수긍이 갔다. 이처럼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의 영광이자 상징이지만 치욕스러운 역사도 품고 있다. 백제 패망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탑의 남측면 우측 기둥에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하고 세운 기념탑’이라고 새겨 놨기 때문이다. 서글픈 감정을 뒤로하고 인근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박물관 3층에는 국보 ‘백제금동대향로’를 전시한 백제대향로관이 있다.


국립부여박물관…금동대향로 아름다움 속으로

1993년 건물터 진흙 속에서 출토돼 극적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받침엔 물을 박차고 오르는 용이, 몸체에는 활짝 핀 연꽃이, 뚜껑엔 겹겹이 솟은 산봉우리들이 표현돼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불린다. 넓은 공간 중심부에는 백제금동대향로 단 한 점만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는데, 향로의 세계관을 소리·향·미디어를 활용해 체험토록 설계돼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평일에 방문해서인지 오롯이 향로와 단독으로 마주하는 행운을 누렸다. 향로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잠시, 이토록 섬세한 공예기술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다. 백제 장인의 손끝과 안목이 남긴 유산은 1000년의 세월을 관통해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K컬처의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백제의 향로는 말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의 힘을 가진 민족이라고. 이제 세상을 향해 그 힘을 다양한 콘텐츠로 보여 줄 차례라고.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