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와 함께 걷느냐에 따라 삶의 결이 달라진다. 한 달에 한 번, 금강 천릿길을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길을 걷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겉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중년의 산책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는 삶의 깊은 위로가 숨어 있다. 사람은 때로 누군가의 농담 한마디에 무장 해제되고, 함께 웃는 순간에 오래 품었던 외로움을 내려놓는다. 친구들이 던지는 해학 속에는 세월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혜안이 숨어 있고, 포복절도할 웃음 끝에는 촌철살인의 통찰이 번득인다. 각자의 분야에서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만나면 어느새 소년처럼 개구쟁이가 된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잠시라도 본래의 순수로 돌아갈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금강은 한반도의 시간을 품은 강이다. 전북 장수의 뜬봉샘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호서 평야를 지나 군산만으로 흘러간다. 강은 서두르지 않는다. 굽이치고 머물고 돌아가며 제 길을 완성한다. 사람의 삶 또한 그러하다. 직선으로만 흐르는 생은 없다. 때로는 돌아가고,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낮은 곳으로 자신을 흘려보내며 깊어진다. 그래서 함께 걸었던 금강의 길을 떠올리면 풍경보다 먼저 사람의 얼굴이 생각난다.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나눈 공감의 깊이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대청호반 오백릿길을 함께 걷고 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인연으로 순천의 신행 선원을 찾게 됐다. 폐교된 초등학교에 자리한 작은 선원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녹차를 만드는 과정을 체험했다. 찻잎을 따고, 덖고, 비비고, 말리고, 다시 열을 입혀 완성하는 제다(製茶)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다림과 인내의 철학이었다. 너무 뜨거우면 향이 죽고, 너무 서두르면 맛이 익지 않는다. 사람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상처와 시간, 기다림과 성찰을 통과해야 비로소 깊은 향을 품게 된다. 문득 깨달았다. 좋은 차는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아픔과 삶의 풍상을 견디며 서서히 우러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떤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의 향기 때문이다.
신행 선원의 영명 스님은 올해 속랍 여든이다. 스님의 시집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속 한 구절은 오래도록 마음을 붙든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저마다 제 몫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을 새벽마다 되뇌다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우리를 지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신의 생을 조금씩 사용하며 살아간다. 오늘 하루도 삶이라는 잔고에서 꺼내 쓰는 시간이다. 그래서 삶은 길이가 아니라 어떻게 쓰였는가로 기억된다. 스님은 또 말한다. “산다는 것은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사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아낌없이 다 쓰고 가는 것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사람은 비로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의 향기를 남기며 살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인가, 함께 걷고 싶은 사람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차 한잔 같은 사람인가. 아마도 삶의 완성은 거창한 성공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긴 시간을 통과한 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그렇구나…!” 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 바로 그때 한 사람의 인생은 비로소 깊은 향의 차 한잔으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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