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언어적 민감도를 높이기 위해

입력 2026. 05. 11   16:03
업데이트 2026. 05. 11   16:10
0 댓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속편이 20년 만에 나왔다. 뛰어난 실력과 넘치는 카리스마의 패션잡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는 나름 화려하게 건재하며 세월을 건너왔다. 앤디(앤 해서웨이)는 잘 성장해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얻는다. 다른 삶을 걸어가던 두 주인공은 각자의 위기 상황에서 다시 만난다. 급변한 환경에 힘겹게 놓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인쇄 매체의 저묾, 모든 예술적 가치가 데이터와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 보는 테크 억만장자와의 대결구도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영화 속 인물들이 2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오는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찾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극 중 미란다의 언행 변화와 그를 가까이에서 ‘집중 마크’하는 수석 비서 ‘아마리’의 존재가 흥미롭다. 미란다가 비난과 비판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설을 내뱉으려 하거나, 모델의 표정이나 몸에 대한 마구잡이식 평가를 던지려 할 때, 아마리는 짧고 단호한 비음 “음음!”으로 그녀의 말을 가로막는다.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미란다는 그 제지에 갑갑해하다가도 이내 입을 닫거나 다른 표현을 찾으려 애쓴다. 짐작하건대 미란다는 그동안 시대착오적인 말과 행동으로 조직 안팎에서 많은 이의 원성을 샀을 것이고, 그로 인한 리더십의 위기 역시 맞았을 것이다.

전반적인 언어 감수성이 비약적으로 민감해졌다. 20년 전, 아닌 2년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쓰던 말들도 찬찬히 따져보아야 한다.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상투적인 말들이 듣는 이에게 불편하게 여겨지지 않을지 점검해야 한다. 과거에는 ‘카리스마’나 ‘열정’으로 포장되던 거친 언사들이 이제는 ‘폭력’이자 ‘결례’로 규정된다. 세대와 문화, 계급, 젠더 등의 경계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말이 많아졌다. 무심코 사용한 단어가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파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나, 어떤 말을 쓰면 되고 안 되는지 정답과 오답의 틀로만 나눠 생각해 말하기가 두려워 입을 닫게 된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언어 감수성을 기르는 일은 단순히 단어 몇 개를 교체하는 기술적 작업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우선이어야 한다. 각자의 언어 감수성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말의 무게 중심을 내가 아닌 듣는 이에게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나의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가서 닿을지 더욱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할 말도 속 시원히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답답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할 말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두루 헤아려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굳게 인정해야 한다.

만약 스스로 이 감각을 기르고 유지하기 어렵다면 미란다처럼 곁에 ‘아마리’와 같은 이를 둬야 한다. 나의 말에 적극적으로 경고해 줄 수 있는, 나보다 언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을 가까이 하자. 나의 말이 가진 영향력이 커질수록 내 언어적 허점을 가감 없이 지적해 줄 수 있는 불편한 아군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적받는 순간의 껄끄러움을 견뎌내는 힘이 곧 그 사람의 품격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모르고 내뱉는 (또는 몰랐다고 우기며 내뱉어진) 수많은 말로 우리는 너무 많은 불화를 겪고 있고 나아가 불통을 잉태한다. 혹시 지금 “뭘 그런 것까지 일일이 따져서 말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일단은 그런 마찰과 저항을 경험하는 자신을 칭찬하자. 이는 부지불식간 상대에게 불편함을 끼칠 말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요, 언어적 민감도를 한층 갖추게 된 셈이니 말이다.

정연주 공적말하기연구소 대표
정연주 공적말하기연구소 대표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