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열
국가보훈부 공동연재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기 - ‘내 일(Job) 출근합니다’
31. 최성환 예비역 육군대위
13년간 7개 지역 10개 보직 복무…전국 누비던 1막 내리고 아버지 고향에 새 둥지
든든한 지원사업 큰 도움…무토양 재배 ‘쌈채팩토리’ 농업회사법인 설립 구슬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정지용 시인의 시에 음율을 붙여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부른 ‘향수’의 첫 구절이다. 이 곡은 평화롭던 고향을 회상하며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대전, 제주, 김포, 당진으로 옮겨가며 학창시절을 보낸 뒤 군복을 입고 또 다시 전국을 누볐다. 그리고 전역 후 아버지의 고향에 정착해 스마트팜으로 둥지를 틀었다. 쌈채팩토리 상추농장을 운영하는 최성환 예비역 육군대위.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에서 사시사철 국민 밥상에 오를 신선한 상추를 재배하는 충남 당진시의 스마트팜을 찾았다. 정리=맹수열 기자/자료=국가보훈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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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머무름은 삶의 일상이었다
대전에서 태어난 최 예비역 대위는 대전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해 제주에서 졸업했다. 중학교는 제주에서 입학해 김포에서 졸업했다. 고등학교는 김포에서 입학해 당진에서 졸업하고, 다시 대전 목원대학교에 입학해 학위를 마친 뒤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조금 다른 성장 과정을 겪으며 새로운 곳에 대한 적응력과 돌아다니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던 게 장교 생활에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직업 때문에 전국 각지를 다니며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낸 최 예비역 대위는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수월했다. 그는 “13년에 걸친 장교 생활도 어릴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보통신장교로 13년을 복무하는 동안 7개 지역에서 10개 보직을 소화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통신중대장 임무를 수행할 때라고 한다.
1차 중대장 시절 그는 코로나19가 확산돼 집단격리된 부대 대신 과학화전투훈련(KCTC)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급히 훈련을 준비하긴 했지만 통신망 개통 시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상태. 하지만 그와 중대원들은 명령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였다.
보통의 KCTC 훈련 시나리오에 따르면 여단이 운용하는 중계소는 대항군에 의해 파괴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선례를 극복하기 위해 중대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고심 끝에 중계소를 산의 고지가 아닌 8부 능선에 설치하고 위장까지 했다. 운용병 2명이 숨을 죽여가며 임무를 수행해 준 덕에 1주일의 훈련 동안 중계소는 대항군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8부 능선에 중계소를 설치하자고 기지를 발휘해준 중대원들과 훈련을 마친 뒤 함께 포옹하며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추억은 2차 중대장 때 통신차량과 셸터를 대전에서 장성으로 이동하는 훈련을 했던 경험이다. 이동 수단이 기차였기에 더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차량에 탑재된 상태의 통신 셸터를 육상 이동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기차에 싣고 이동하게 된 것. 흔치 않은 상황이라 중대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논의한 끝에 기차 화물칸에 일렬로 차량과 셸터를 올리고 흔들리지 않게 튼튼하게 결박했다. “부대 안에는 실제 훈련을 경험해 본 간부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계획해야 했습니다. 처음 본 광경이 장관이기도 했고 가슴 벅차기도 했습니다. 완벽한 이동훈련을 마쳐 안도감에 뿌듯하고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농업, 스마트팜에 눈뜨다
세 차례에 걸쳐 통신중대장을 지내면서 부하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은 늘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지만, 그는 장교라는 직업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시기 스마트팜을 알게 되면서 군복을 벗고 농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마트팜과 정부의 청년 농업인 정책은 어떤 지원사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혜택이 많습니다. 이 점이 아주 매력이 있었습니다.”
마음은 간절했으나 결정은 쉽지 않았다. “전역 전 가장 고민된 것은 ‘이런 것들을 정말 다 지원받아서 정상적으로 창농을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 전직지원기간이었다고 한다. 이미 귀농에 대한 사전조사를 마친 상태에서 10개월의 전직지원기간 명령을 받았다. 먼저 6개월간 충청남도에서 진행하는 스마트팜 청년창업 교육과정을 받았다. 이론교육, 실습교육, 선도농가 실습까지 풀패키지를 마음 편하게 전념할 수 있었다. 교육을 마친 뒤 각종 지원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역 군인 신분이라 바로 농업인이 될 수는 없었다.
전역증을 받고 본격적으로 농업인의 길에 발을 디뎠다. 부모님이 이미 지역에서 유명한 엽채류 분무수경농가였기에 최고의 전문가를 멘토로 해 자연스럽게 상추를 재배할 채비를 했다.
공중에 청상추 씨앗을 뿌리다
전역 직후부터 농지를 구입하고 시설하우스 공사를 하느라 마음이 촉박했다. 1년 먼저 상추재배를 시작한 동생의 하우스 옆에 나란히 1300평 규모의 스마트팜을 세웠다. 그는 흙을 묻히지 않고 공중에서 뿌리에 영양 미스트를 분사하는 분무경 공법으로 재배하는 시설을 갖춰 청상추 씨앗을 뿌렸다. 이렇게 외국인 근로자 5명과 함께하는 스마트팜의 초보 농장주이자 사장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이제 제가 하는 일은 관리업무입니다. 군에서 지휘관의 직책을 수행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인력관리, 시설관리 및 유지, 유통, 회계 등 사업 전반을 관리합니다.”
텃밭에서 재배해도 한철 매일같이 따먹을 정도로 수확량이 많은 것이 상추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상추는 오죽할까. 1300평 하우스 규모에서 연 300일간 매일같이 4㎏짜리 박스 100개가 출하된다. 출하된 상추는 전량 매일 오후 서울 가락시장으로 옮겨진다. 저녁 8시에 경매가 시작되면 8시1분에 입금 확인 문자가 휴대폰에 뜬다고 한다. 무토양 재배로 흙이나 먼지 걱정 없이 세척이 간편하고 위생적인 청상추는 이렇게 밥상에 올려진다.
전국 최고의 쌈채팩토리를 꿈꾸다
600평 규모의 부모님, 1300평 규모의 동생, 그리고 또 1300평 규모의 그. 이 스마트팜 세 곳에서 출하되는 상추 물량은 당진에서 출하하는 엽채류의 30%를 차지할 정도다. 지역 내 엽채류 재배 농가는 100여 곳이지만 최 예비역 대위 가족처럼 분무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농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가 전역한 지는 이제 반년 정도 지났다. 그동안은 스마트팜 농장을 짓는 데 전력을 다했다. 총투입된 비용은 9억 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지원금은 3억 원, 정책자금을 통한 장기저리대출은 5억 원이다.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했다. “연 매출 5억 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중 3분의 1 정도를 순이익으로 판단, 20년 장기대출을 5년 안에 상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역을 앞둔 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준비 중이라면 전역 이후 결정하지 말고 꼭 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향후 진로와 계획을 아주 상세히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도, 군에서도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었던 그가 정착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는 가끔 동생에게 농장을 맡기고 여행을 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또 앞으로는 농업회사법인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청상추 외에도 작목을 다양화하고 생산한 농산품을 가공, 포장, 유통, 판매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아우르는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이를 순차적으로 성장시켜 전국 최고의 엽채류 농장 ‘쌈채팩토리’로 만들어 가는 게 꿈이란다. 어느덧 농업인방송에 수범사례로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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