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혁신은 늘 고통스러운 선택을 동반한다. 2019년 데이비드 버거 전 미국 해병대사령관이 주도한 ‘포스 디자인(Force Design) 2030’은 그 정점이었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전차부대와 포신포병을 과감히 해체했다. 대신 도서를 전술적 거점으로 활용하는 ‘공격적 분산’ 전략에 따라 해병연안연대(MLR)로 부대 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이는 미래 전장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미 해병대의 강력한 의지였다. 최근 미 해병대가 보여 주는 일련의 ‘수정’은 우리에게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전략적 유연성’과 ‘전쟁 본질에 대한 성찰’임을 시사한다.
미 해병대는 ‘포스 디자인 2030’을 추진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거쳤다. 당초 모든 해병연대를 미사일 중심 MLR로 전환하려던 최초 계획을 수정해 일본 오키나와에 위치한 제3해병원정군(III-MEF) 예하 해병연대(3개)만 대상으로 개편을 진행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 전통적인 상륙작전과 해병공지기동부대(MAGTF) 운용의 핵심인 ‘전통적 해병연대’ 가치를 재인식하고, III-MEF 예하에 다시 창설하는 방향으로 보완해 나가고 있다. 이는 첨단 기술에 기반한 분산작전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대등한 국가 간의 고강도 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유기적인 화력과 보병의 밀집력이 살아 있는 전통적 편제가 여전히 핵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결과다.
이런 변화는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양상과 궤를 같이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은 드론과 사이버전이라는 첨단 기술이 전장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전선을 돌파하고 거점을 사수하는 결정적 수단은 전통적인 포병 화력과 견고한 기계화 전력이었다.
미 해병대 역시 ‘분산된 기동’이 주는 생존성을 추구했으나 실제 전장에서 요구되는 압도적 타격력과 지속적인 점유 능력은 전통적인 MAGTF 역량에서 나온다는 실전적 교훈을 재확인한 셈이다.
미 해병대의 이런 행보는 결코 과거로의 단순한 후퇴가 아니다. 오히려 혁신 단계에서 마주한 한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이를 보완해 더 강력한 ‘하이브리드 전력’으로 거듭나려는 진화의 과정이다. 미 해병대는 첨단 미사일체계와 드론을 수용하면서도 해병대의 근간인 ‘강습 DNA’를 잃지 않기 위해 전통적 MAGTF의 유연함과 파괴력을 복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시사점은 명확하다. 군사적 혁신은 유행하는 이론이나 기술적 낙관주의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 해병대가 스스로의 실험과 도전을 복기하며 수정에 나선 것처럼 우리 역시 변화하는 전장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전쟁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첨단 기술은 전쟁이 효율을 극대화하는 수단이지 전쟁 그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한 적의 위협은 여전히 막강한 재래식 전력과 첨단이 뒤섞인 혼합전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 억제하고 물리치기 위해선 신기술의 수용만큼이나 전통적 전력의 가치를 보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 해병대의 성찰적 혁신 과정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미래라는 이름의 화려한 구호에만 매몰돼 있지 않은가? 혁신은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검증된 전통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싹틔울 때 비소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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