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법정 스님을 그리워하며

입력 2026. 05. 08   16:16
업데이트 2026. 05. 1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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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틈날 때마다 법정 스님의 산문집 『물소리 바람소리』와 『텅 빈 충만』을 다시 읽었다. 1986년 10월에 나온 『물소리 바람소리』는 스님이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지내는 동안 출간한 것이다. 그 뒤로도 강원도 산골 작은 오두막에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는데, 홀연히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 삼아 지내며 자연이 주는 순수한 가르침을 곧고 정갈한 글로 세상과 나눈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함께 아궁이에 불을 지피거나 빨래를 하는 등 혼자 살아가는 구도자의 청빈한 삶이 잘 드러나 있다. 시종일관 욕심을 버리고 떠나라는 가르침과 더불어 사람은 혼자일 때 내면의 목소리와 비로소 대면할 수 있다는 스님의 목소리를 활자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법정 스님은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는 나중에 길상사를 세운 뜻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7년 12월 길상사 창건 법문 중에서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1989년 6월 초판본이 나온 『텅 빈 충만』은 우리 안에 담긴 모든 요소를 비움으로써 비로소 충만할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책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가?”를 묻는 어느 청년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들어 있다. 여기서는 ‘열반(涅槃)’이란 죽음을 말한 게 아니라 온갖 번뇌와 갈등이 사라져 평온하고 청정하게 된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원어인 ‘니르바나(nirvana)’란 “번뇌의 불꽃이 꺼져 버린 상태”이기에 ‘적멸(寂滅)’이라고도 번역하는 것이리라. 법정 스님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외부에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이야말로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법정 스님은 1976년 4월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한 이후 종교적 색채에 매몰되지 않은 가르침을 담은 산문집을 연이어 내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외부인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고급식당이었던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길상사를 세운 뒤에는 정기적으로 대중에게 법문을 들려줬다. 스님은 정갈한 산문을 통해 독자들에게 맑고 향기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평생 ‘무소유’를 실천함으로써 귀감이 됐다.

스님이 입적하신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생전에 김수환 추기경과 허물없이 지내던 모습과 함께 부처님 오신 날·성탄절을 서로 기꺼이 축하해 주던 아름다운 장면도 떠오른다. 오늘날 극심한 양극화와 함께 계층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음에도 정신적 지도자마저 찾아보기 힘든 시절을 건너고 있다. 그래서일까. 법정 스님이 “물소리 바람소리는 내 산거(山居)에서 항시 대하는 자연의 소리이며, 또한 우리 시대 세상의 소리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홀로 지낼 때가 많으면서도 의식의 흐름은 늘 세상과 이어져 있다. 사람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든 간에 원천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하신 말씀이 사무치는 요즈음이다.


<p>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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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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