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회
안승회 기자의 군금해 - 영원한 블랙이글, 고 김도현 중령
2005년 2월 블랙이글스 합류
이듬해 어린이날 에어쇼 중 순직
관람객들 살리려 비상탈출 포기
공사 44기…임관 당시 합참의장상
겸손한 비행 강조하던 조종사 평가
고(故) 김도현 중령은 2006년 5월 5일 공군10전투비행단 수원비행장에서 열린 블랙이글스 에어쇼에서 순직했습니다. 비상탈출이 가능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았습니다. 자칫 수많은 어린이가 다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국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던 그 선택은 지금까지도 공군, 나아가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숭고한 희생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 김도현 중령 순직 20주년을 맞아 ‘우리들의 영원한 블랙이글’이었던 그는 어떤 군인이었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안승회 기자/사진=국방일보 유튜브 화면 캡처
블랙이글스는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입니다. 아찔한 곡예비행으로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해외 에어쇼에 참가해 대한민국 공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블랙이글스 조종사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총 비행시간 최소 700시간 이상, 비행교육 성적 상위 3분의 1 이내, 전투기 4대 이상을 지휘할 수 있는 편대장 자격 등을 갖춰야 합니다.
여기에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팀원 전원의 만장일치 동의입니다. 불과 1~2m 남짓한 간격을 두고 시속 600㎞로 비행하는 극한의 곡예비행은 실력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습니다. 팀원 간 절대적인 신뢰가 전제돼야 합니다. 블랙이글스가 ‘팀워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992년 공군사관학교(공사) 44기로 입교한 김도현 중령은 1996년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임관 당시 종합성적 4등으로 합참의장상을 받았습니다. 공사 재학 시절에는 전대장 생도를 맡았고, 공사 홍보달력 모델로도 활동했습니다. 임관 후 F-5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2005년 2월 블랙이글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블랙이글스 소속으로 총 55회 에어쇼에 참가했고 950시간의 비행 기록을 쌓았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비행은 항상 겸손하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조종사로 기억합니다.
10년 가까운 조종사 생활 동안 단 한순간도 임무에 소홀함이 없었던 참군인이었다는 평가도 뒤따릅니다. 김 중령은 평소 “월급을 안 줘도 좋으니 50세까지는 비행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할 정도로 ‘비행’ 그 자체를 사랑했습니다.
가슴 아픈 사건은 2006년 5월 5일 발생했습니다. 이날 공군 수원비행장에서 어린이날 기념 블랙이글스 에어쇼가 열렸습니다. 현장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을 포함해 1300여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당시 김 중령은 소령 진급을 앞둔 대위였습니다. 만 32세로 두 아들의 아버지였고, 그날이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하루 전 휴가를 내 어린 두 아들과 경남 고성군의 공룡박물관을 다녀왔고, 아내를 위한 깜짝 선물도 준비했습니다. 어린이날 당일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대신 더 많은 어린이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주기 위해 조종간을 잡았습니다.
에어쇼에는 A-37B 6대가 참가했습니다. 1~4번기는 포메이션, 5번과 6번기는 솔로기였습니다. 김 중령은 6번기에 탑승했습니다. 오전 11시51분쯤 다섯 번째 기동인 ‘오포징 에이 롤(Opposing A Roll)’이 시작됐습니다. 5번과 6번기가 정면으로 접근해 교차한 뒤 기수를 틀고 옆으로 한 바퀴 돌며 상승하는 기동이었습니다. 그러나 6번기는 고도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엔진 고장으로 기체가 추락하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당시 2번기에 타고 있던 임한일 대령은 “‘넘버 식스 풀업’이라는 콜이 나왔는데, 그것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며 “활주로 쪽을 바라봤을 땐 이미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후 공군은 공군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엔진 고장. 5번기와 교차한 뒤 왼쪽으로 횡전하는 과정에서 6번기 왼쪽 엔진에 압축기 실속이 발생해 엔진이 정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6번기는 활주로 남쪽 끝, 활주로와 보조 활주로 사이 잔디밭에 추락했습니다. 추락 직후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곳은 관람석과 불과 1.8㎞ 떨어진 지점이었습니다. 자칫 더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김 중령은 콕핏 안에서 오른손은 조종간을, 왼손은 스로틀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화재로 외형은 훼손됐지만, 마지막까지 전투기를 통제하려 했던 흔적은 뚜렷했다고 합니다.
탈출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A-37B는 저고도에서도 비상탈출이 가능한 기체입니다. 하지만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탈출했다면 기체가 관람석 방향으로 향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1300여 명의 관람객 중 대다수는 어린이였습니다. 블랙이글스의 첫 번째 수칙은 ‘추락 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민가와 관람객에게는 피해를 주지 말라’입니다. 김 중령은 바로 그 수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 짧은 순간, 그는 군인으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자신의 목숨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선택한 겁니다.
임 대령은 “어린이날 행사였고 관람객들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며 “선배님이 평소 갖고 있던 신념과 교육, 훈련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판단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임 대령은 “선배님의 살신성인 정신을 모두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고 김 중령의 어머니 김기순 씨 편지
“꿈이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몸은 천으로 덮어 놔서 못 봤고, 얼굴은 퉁퉁 부어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래도 우리 아들이라고 확인은 되더라고요. 만일 관중 중 한 명이라도 다치고 자기가 살았다면 견디지 못했을 아이입니다. 자기 몸 하나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살린 거 아니에요. 훌륭한 우리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평소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 본 적이 없어요. 이제는 곁에 없어 말한들 아무 소용없겠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우리 아들이 이 세상에서 못다 한 일을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안승회 기자의 군금해’는…
유튜브 누적 조회 수 1억7000만 회를 넘어선 국방홍보원의 대표 영상 콘텐츠 ‘안승회 기자의 군금해’가 국방일보 독자들을 만납니다. 병영생활, 무기체계, 국방정책 등 군 전반의 다양한 현안을 현장 중심으로 조명합니다. 지면에 담기 어려운 생생한 현장 모습, 추가 인터뷰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국방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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