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군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슬픔’이란 감정을 다루는 일은 군장을 짊어지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과거 육군에서 복무할 당시 무거운 군장을 메고, 험난한 지형에서 행하는 장거리 행군이 일상이었다. 행군하다 보면 군장 무게도 무게이지만, 그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는지가 관건임을 깨닫는다. 중력을 거스를 수도, 무거운 군장을 내던져 버릴 수도 없기에 오로지 강인한 정신력과 군장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짊어지고 견뎌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잃거나 정신적으로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면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하게 된다. 이런 감정과 상처는 상자에 넣어 뚜껑으로 꽉 닫아 선반에 올려 두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슬픔은 군장에 추가로 더해지는 무게와 같다. 신학에서 말하는 ‘영원’에 이르지 않는 한 그 무게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그 무게를 감내하며 나아가는 우리 자신일 뿐이다.
22㎏ 군장용 중량판을 갑자기 짊어지게 됐다고 가정해 보자. 한동안 그 무게를 버텨 내느라 바동거리며 행군 속도도 느려질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거나 슬픔의 무게가 클수록 정상 속도로 회복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실패했다거나 나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더해진 슬픔의 무게를 어떻게 짊어지고 나아갈지 방법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군장 행군을 하면서 맨 먼저 깨닫는 것은 무거운 짐일수록 등에 최대한 밀착되도록 하고, 무게중심이 등판 위쪽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게가 아래로 쏠리거나 이리저리 흔들리면 무게 균형을 깨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반대로 군장을 올바르게 꾸리면 아무리 무거운 군장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상실이라는 감정도 마찬가지다. 슬픔을 겪는 초기에는 가장 무거운 상실감을 가슴에 두고 산다. 시간이 지나 감당할 정도의 강인함이 생기면 무게는 달라지지 않아도 느끼는 방식은 달라진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짓누르던 버거운 무게는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녹아든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 지점에서 고군분투한다. 그럴 때는 감정의 군장을 재정리하면 된다.
군장 행군을 많이 해 본 군인이라면 알 것이다. 중간에 한 번씩 군장을 내려놓고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특정 부위에 압박이 생겨 결국 무너질 것이다.
감정이라는 군장도 다를 바 없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주기적으로 감정의 군장을 내려놓고, 내 안의 슬픔을 꺼내 보고,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결국 무너진다. 과거에 겪은 상실감은 뒤죽박죽 엉킨 채 예고 없이 요동치게 된다. 그러다 주변에 누군가가 슬픈 일을 겪을 때 곁에서 도움이 되기보다 자신이 지닌 슬픔의 짐까지 이들에게 쏟아부으며 함께 무너진다.
슬픔이라는 군장이 잘 정리돼 있다면 한때 기어갈 정도로 뒤처지게 했던 슬픔과 상실감이 일종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세심히 정돈된 감정이라는 군장 안에서 공감과 인내, 침묵과 지혜를 꺼낼 수 있다. 그러면 누군가의 곁에서 선물과도 같은 말을 건네기도 한다. 지금 천천히 걸어간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나 역시 그 길을 걸어봐 이해할 수 있다고. 감정의 무게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그 무게의 가치를 새롭게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다.
군장을 잘 꾸리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그 무게조차 존중하고, 귀히 다루며, 의식해서라도 짊어질 때 결국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다시 전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번역: 김오성 주한 미 공군51전투비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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