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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너머의 ‘난중일기’

입력 2026. 04. 29   14:38
업데이트 2026. 04. 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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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충무공 탄신 480주년·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전시장 안은 관람객으로 북적거렸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차분했다. 유리창 너머 유물들이 뿜어내는 묵직한 힘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유물 사이에서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난중일기』가 전시된 자리였다. 유리 너머 놓인 기록 옆에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소개돼 있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이순신 제독은 그날그날의 일을 꾸준히 기록했다. 기록 속의 그는 전장에서 아들을 잃고 슬퍼하며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고, 병사들의 끼니를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난중일기』는 단순한 영웅의 무용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책임과 고뇌의 시간을 기록한 일기다.

그 일기 앞에 서서 기록의 힘을 생각해 봤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레 맡고 있는 임무 생각으로 이어졌다. 현재 해군교육사령부에서 미디어병으로 복무하며 교육훈련 현장을 촬영하고 편집한다. 장병들의 첫걸음을 영상으로 남기는 게 담당 역할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작업이 기계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기록하는지, 이렇게 남기는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순신 제독의 일기가 그를 단순한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부하들을 사랑했고 책임감 있었던 명장으로 기억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니 지금 하는 일의 의미가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그가 일기에 진심을 눌러 담았듯이 나 또한 카메라를 통해 충무공의 후예로 거듭나는 장병들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은 그저 형식적인 작업이 아니라 각자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전우들의 순간을 남기는 것이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마주한 나의 임무가 이전보다 훨씬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렌즈 너머 전우들을 조금 더 깊이 바라보려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훈련 순간을 정성껏 기록하다 보면 그 장면들이 모여 우리 해군의 오늘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난중일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남은 군 생활 동안 전우들의 오늘을 성실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함께 땀 흘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 내는 이 평범한 시간이 결국 해군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난중일기』가 시대를 넘어 진심을 전해 주듯이 내가 남기는 장면들도 오늘의 해군을 증언하는 기록이 되길 바란다.
 

신지섭 상병 해군교육사령부 정훈실
신지섭 상병 해군교육사령부 정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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