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사자가 지휘하는 양들의 군대

입력 2026. 04. 28   15:09
업데이트 2026. 04. 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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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 양이 이끄는 100마리 사자보다 한 마리 사자가 이끄는 100마리 양이 더 무섭다.”

고대 그리스의 정복 군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남긴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페르시아제국 등 강대한 적들을 잇달아 격파하고 방대한 지역을 통합하는 불세출의 위업을 세웠다. 33세의 짧은 생애에도 이런 통찰이 가능했던 이유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인류의 전쟁사에 수없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게 1588년 영국 정복에 실패한 스페인의 무적함대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 및 정복을 하며 쌓은 자산을 바탕으로 해상 패권을 확보한 강대국이었다. 몇 해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골든 에이지(황금시대)’는 압도적인 스페인군의 침공에 초조해하는 영국의 불안과 긴장감을 잘 묘사했다.

하지만 무적함대의 총사령관은 해전에 문외한이었다. 자만심에 취한 스페인은 영국 함대쯤은 쉽게 쓸어버릴 것으로 여기고 육상 결전에 힘을 집중했다. 절박했던 영국은 치고 빠지기 전법과 화공, 근접전 대신 포격전 등 다양한 전술로 철저히 대비했다. 영국은 때마침 불어닥친 폭풍 ‘신(神)의 바람’ 도움까지 받으며 기적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영광은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갔다.

그런가 하면 영국도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솜전투에서 지휘관의 무능으로 패배하며 제국의 황혼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영국군 지휘부는 기관총과 참호의 위력을 과소평가하고 고리타분한 과거 교리를 고집했다. 그 결과 첫날 전투에서만 무려 6만 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알렉산드로스의 어록에 빗대 ‘당나귀가 이끄는 사자들’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반대로 ‘양들의 군대’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789년 대혁명 이후 오합지졸 군대를 규합해 유럽을 석권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진격하는 대담함, 불리함 속에서도 적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 전술, 병사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리더십까지 군사 천재의 전형이었다. 다만 그 나폴레옹의 오판이 무리한 러시아 원정을 강행하게 만들고 몰락을 자초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 역사에도 사자의 심장을 가진 지휘관이 적지 않았다. 그중의 으뜸은 임진년 왜군의 침략으로 백척간두에 놓인 나라와 백성을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라는 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 충무공은 원균이 1597년 칠천량해전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했어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尙有十二).” 그 와중에 임금께 올린 장계는 10배나 많은 왜군을 물리친 명량해전의 빛나는 승리의 신호탄이었다.

불패의 장수 충무공이 불멸의 존재로 오늘날까지 우리 심장을 격동시키는 이유는 또 있다. “죽으려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명량해전 전날 『난중일기』에 쓴 글귀는 대결전을 앞두고 동요하는 부하들은 물론 자신마저 다잡기 위한 인간적 고뇌였을 것이다. 그는 해전 초반 겁에 질린 부하들이 뒤로 물러났지만 홀로 사투를 벌였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고 양의 무리가 포효하는 사자 떼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에 즈음해 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여건상 리더십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충무공이 지금의 후손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자못 궁금하다.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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