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판도 바꾸는 드론·AI
우주 드론이 바꾸는 정찰의 패러다임
최근 국제 사회의 시선은 한 ‘기술 거물’의 입에 쏠렸다. 일론 머스크가 이란의 인터넷 통제에 맞서 “이란인들을 위해 스타링크를 무제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독재 저항의 수단으로 우주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이 화려한 약속은 서방 세계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시선을 중동에서 동유럽 전장으로 돌리면 같은 기술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쓰이는 기이한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의 새벽, 러시아군의 자폭 드론 ‘몰니야(Molniya)’가 우크라이나 진지를 향해 날아든다. 드론의 등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란 시민들에게 자유를 약속했던 바로 그 장비, ‘스타링크’ 단말기가 장착돼 있었다. 지난 1월에는 스타링크를 탑재한 러시아 드론이 이동 중인 우크라이나 여객열차를 타격해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기술고문에 따르면 스타링크 장착 드론 공격은 이미 수백 건에 달한다.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2월 미군은 이란 샤헤드-136을 역설계해 만든 자폭 드론 루카스(LUCAS)를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에 실전 투입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러시아 군사 분석가들이 식별한 것은 루카스에 통합된 스타링크 계열 안테나였다. 이란이 설계하고 러시아가 복제해 스타링크를 달았던 바로 그 드론을 이번에는 미국이 역설계해 같은 위성망을 단 채 이란을 공격한 것이다. 한쪽에서는 자유의 통로가, 다른 한쪽에서는 살상 무기의 신경망이 되는 이 장면은 드론과 인공지능(AI)이 우주로 영역을 확장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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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장에서 드론은 ‘하늘의 눈’으로 불리지만 그 눈에는 치명적인 약시(弱視)가 존재했다. 바로 ‘통신 거리’의 한계다. 지상의 무선 신호는 지구의 곡률과 지형에 막혀 수㎞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조종 신호가 끊기면 드론은 고철에 불과했다. 이 물리적 한계를 깨뜨린 것이 고도 550㎞ 저궤도를 뒤덮은 수천 개의 위성군 스타링크다. 러시아군은 이 민간 위성망을 전용해 드론의 ‘목줄’을 끊어버렸다.
스타링크의 고속 데이터 링크는 전장의 재밍(Jamming)을 뚫고 HD급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며 드론을 정찰과 타격을 동시에 수행하는 지능형 무기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우주 연결성’은 정찰의 패러다임을 ‘간헐적 감시’에서 ‘지속적 감시’로 바꿨다. 과거의 정찰 위성은 정해진 궤도를 도는 기차와 같아서 위성이 지나가는 시간만 피하면 감시를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드론과 AI가 우주로 진출하면서 ‘잠들지 않는 눈’이 탄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 우주군의 무인 우주왕복선 ‘X-37B’다. 이 우주 드론은 2022년 무려 908일간 궤도에 머무르다 귀환했다. 위성처럼 궤도를 돌지만 필요하면 자체 엔진으로 고도와 궤도를 바꾼다. 정해진 레일 위의 기차가 아니라 차선을 바꾸는 스포츠카처럼 적이 예측하지 못한 시간과 각도에서 감시를 수행하는 것이다. 중국 역시 ‘셴룽(神龍)’을 쏘아 올리며 우주 정찰 경쟁에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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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이러한 우주 드론이 단순한 감시를 넘어 ‘근접 기동(Proximity Operations)’까지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셴룽은 궤도상에서 스스로 분리한 물체에 다시 접근하는 기동이 관측된 바 있다. 미 우주군의 정지궤도 우주감시위성(GSSAP)은 타국 위성에 근접해 정밀 관찰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는 궤도상에서 위성에 접근해 연료를 보급하거나 로봇 팔로 수리하는 궤도 서비스(On-Orbit Servicing) 기술을 시연하는 임무가 4건 계획돼 있다. 이는 위성의 수명을 연장하는 민간 기술이지만 적 위성에 접근해 기능을 무력화하는 군사적 전용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우주의 드론은 더 이상 수동적 관측 장비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이동하며 임무를 수행하는 능동적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래의 정찰은 ‘우주의 눈(센서)’과 ‘우주의 신경망(통신)’이 하나로 통합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지상의 드론이 수집한 전술 정보가 저궤도 통신망을 타고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우주의 X-37B나 군집 위성이 해당 지역을 정밀 감시해 전략 정보를 보완하는 구조다. 러시아가 2027년 상업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250기 이상의 독자 위성망 ‘라스베트(Rassvet)’ 구축에 착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주 통신망을 장악하지 못하면 지상의 드론도, AI 미사일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이 전쟁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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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미 이 경쟁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2023년 12월 1호기를 시작으로 2025년 11월 5호기까지, ‘425 사업’의 군사정찰위성 5기가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모두 궤도에 안착했다. 이로써 한국군은 북한 전역을 2시간 단위로 독자 감시하는 능력을 확보했다. 후속 사업은 더 야심적이다. 합성개구레이다(SAR) 위성 12기와 초소형 위성 40기를 추가 배치해 감시 주기를 30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고체연료 발사체 기술은 이 계획의 핵심 기반이다. 유사시 적이 기존 위성을 파괴하더라도 다수의 초소형 위성을 신속히 쏘아 올려 감시망을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화시스템은 2025년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해상도 15㎝급 초저궤도 SAR 위성 모형을 공개하며 차세대 정찰 자산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가 숨을 틈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기술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주는 더 이상 공상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이란의 하늘을 여는 열쇠이자 우크라이나의 참호를 노리는 칼날이 된 스타링크의 사례처럼 우주 기술은 이미 우리의 안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상의 드론이 전술적 승리를 가져다준다면 우주로 확장된 드론과 통신망은 국가의 생존을 지키는 ‘전략적 방패’다. 다음 회에서는 무선으로 드론에 에너지를 전송하는 기술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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