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Ⅲ

군사·경제적 요충지… 비극의 성벽 너머 희망을 보다

입력 2026. 04. 27   17:17
업데이트 2026. 04. 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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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 Ⅲ
아프리카-케냐 ④

바다에서 본 예수 요새.
바다에서 본 예수 요새.

 

아프리카 동부의 핵심 항구인 몸바사는 군사·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다. 케냐 남동부 인도양 연안에 있는 몸바사는 교량으로 본토와 연결돼 있다. 동아프리카 물류의 중심지인 몸바사는 인구 130만 명으로 나이로비에 이어 케냐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내륙국가의 ‘숨구멍’ 몸바사
몸바사는 예로부터 인도양 무역의 요충지로 아랍·페르시아 상인들과 활발한 교역을 했다. 1498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가 잠시 몸바사에 상륙했고 1505년엔 포르투갈이 이 도시를 점령했다. 포르투갈인은 인도양 전진기지로 이곳에 견고한 성채를 건설했지만, 1698년 오만제국이 이 요새를 차지했다. 1895년부터는 영국이 이 지역을 보호령으로 선포하면서 케냐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다. 

몸바사는 동아프리카 최대 항구로 연간 수천만 톤의 화물을 처리한다. 내륙국인 우간다·르완다·부룬디·남수단·콩고의 수출입 물량 운송은 대부분 몸바사 항구에 의존한다. 이들 국가와 몸바사는 도로·철도·파이프라인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물류 이동과 항만 이용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케냐는 도로·철도·항만 이용료, 통관비 등으로 막대한 외화 수입을 챙긴다. 그러나 최근엔 인접국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 두 항구는 동아프리카 물류를 놓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몸바사의 도로는 널찍하고 차량 흐름도 좋았다. 대규모 중국·일본 자본의 투자로 교량·도로·항만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한다. 하지만 낡은 시내 건물과 오가는 오토바이 삼륜택시는 이 도시의 경제 수준을 보여 주는 듯했다.

몸바사 항구의 수출입 화물 부두.
몸바사 항구의 수출입 화물 부두.

 

동방을 향한 전진기지 예수 요새
몸바사의 상징적인 전쟁유적은 철옹성 같은 구(舊) 항만의 ‘예수 요새(Fort Jesus)’다. 포르투갈은 1593년부터 요새 공사를 시작해 1596년 완공했다. 서구세력이 인도양을 장악하려 한 최초의 거점인 이 요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됐다. 

성채 정문에서 입장권을 사자마자 안내를 자청하는 현지인이 3~4명 따라온다. 자격을 갖춘 안내인인지도 불투명하다. 400여 년 숱한 전쟁을 치른 성곽이지만 견고함은 변함이 없다. 넓은 성채 내부에는 병영건물도 남아 있다. 성벽 귀퉁이에 한 무리의 포르투갈 여행객이 몰려 있었다. 그들이 둘러선 바닥에는 큰 대(大)의 유해 한 구가 유리관에 누워 있다. 성곽 안에서 발견된 포르투갈 병사의 유해다. 수세기 전 고국을 떠나 아프리카까지 온 자신들의 선조를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궁금했다. 예수 요새는 수백 년간의 전쟁에서 무려 9번이나 주인이 뒤바뀌었다. 요새 박물관에서는 성채의 건설과정도 보여 준다. 성벽은 해안에서 채취한 산호석을 깎아 쌓았다. 돌과 돌 사이는 석회, 진흙, 점토를 섞은 접착제로 메웠다. 공기와 접촉하면 더욱 단단해지는 성분을 가졌다고 한다.

성벽은 100% 순수 인력으로만 공사를 했다. 15~18m 높이의 성벽 내부는 흙과 잔돌로 채웠다. 외부는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로 마감했다. 곳곳의 경계초소 또한 완벽한 방호력을 갖췄다. 성벽을 뚫어 만든 포대는 옛 항구와 먼바다를 지향하고 있다. 포르투갈 해안포의 사거리는 800m에서 최대 2㎞에 달했다. 덕분에 성채는 적 선박의 항구 접안을 강력히 통제할 수 있었다.

예수 요새 포구에서 바라본 인도양.
예수 요새 포구에서 바라본 인도양.

 

포르투갈 몰락의 신호탄 몸바사 요새 함락
완벽한 방어시설을 갖춘 이 성채도 오만제국의 장기 포위전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1696년 요새를 포위한 오만의 육·해군은 2년 9개월 동안 지속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포르투갈군은 외부로부터의 식량과 물자 지원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증원군은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 식량은 고갈됐고 전염병까지 돌았다. 원주민 병사 탈주도 이어졌다. 결국 요새가 함락되면서 포르투갈의 해양패권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몸바사 최후의 전투 당시 포르투갈 병사의 기록이다. “식량의 완전 고갈로 말, 개, 쥐까지 잡아먹었다. 심지어 가죽신발까지 삶아 허기를 채웠다. 성벽은 남아 있지만 지킬 사람이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하느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성벽 아래 축구장에선 어린아이들의 시합이 한창이다. 참혹한 전쟁역사의 현장에서도 이처럼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며 쉼 없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예수 요새 내부의 성루.
예수 요새 내부의 성루.


순수하고 성실한 케냐의 젊은이들
나이로비 복귀를 위해 몸바사역까지 택시를 이용했다. 운전기사 잭슨은 활달하고 호쾌했다. 과거 한국인 선장 아래서 일한 자신의 좋은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항구도시 덕분에 케냐가 얻는 수익이 쏠쏠하단다. 화물용 크레인이 밀집한 부두 옆 도로에 자동차를 정차해 사진 촬영을 도와주기도 했다. 추가 요금을 염두에 둔 배려다. 몸바사 역청사는 승객들로 붐볐다. 식당을 찾으려고 기웃거리니 잽싸게 여종업원이 소매를 끈다. 생각할 여유를 갖고자 일부러 화장실에 들렀다. 문 앞을 지키던 그녀는 끈질기게 자기 식당으로 안내한다. 그 집념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시리프라는 이 여종업원은 싱글맘이다. 혼자 어린아이 둘을 키우며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악착같이 저축하여 몸바사에서 자신의 식당을 차리는 게 꿈이란다. 초등학생 또래의 일부 종업원도 보였다. 식사 후 기념촬영을 하자고 하니 식당 내 모든 직원이 몰려나온다. 최근 위상이 높아진 한국인을 향한 호기심 때문인 것 같았다. 순수하면서도 성실한 그들과 소통해 보니 케냐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는 조선대 초빙교수, 충남대·국간사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세계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등이 있다.
필자 신종태는 조선대 초빙교수, 충남대·국간사 외래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세계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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