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우리 곁에, 예술

죄의 무게,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짊어진다

입력 2026. 04. 23   16:27
업데이트 2026. 04. 23   16:44
0 댓글

우리곁에, 예술
영화 속 미술 / 보스의 ‘최후의 심판’과 영화 ‘킬러들의 도시’

미술관서 ‘최후의 심판’ 그림 마주한 킬러 레이
고통스러운 인간 모습 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인간의 타락과 죄, 지옥의 모습 세밀히 그린 작가
낙원과 지옥 어우러진 비현실적 아름다움 선사

영화 ‘킬러들의 도시’ 스틸컷.
영화 ‘킬러들의 도시’ 스틸컷.


‘지옥도’는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많이 그려진 주제다. 지옥에서 이뤄지는 형벌이 얼마나 잔인하고 구체적인지, 그곳에서 죽지도 못한 채 끝없는 시간 속에 갇힌 인간의 비참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동양의 지옥도가 불교를 중심으로 펼쳐졌다면 서양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기독교 문화에서 중요하고 보편적으로 다뤄졌다. 지옥도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사후 세계를 눈앞에 보여주며 ‘신을 따라 선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화가에게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세계를 그려야 하는 만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되는 영역이었다. 이 분야에 있어 서양 미술사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인물이 있다. 바로 15세기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다.

보스의 작품은 대부분 성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인간의 타락과 죄, 그 결과 맞이하는 지옥의 모습을 세밀하고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때문에 보스는 ‘지옥의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의 지옥 표현은 15세기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넘친다. 그는 지옥을 단순히 불구덩이나 형벌의 장소로만 그리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의 머리와 새의 몸을 지닌 기이한 존재가 떠돌고, 식물과 과일이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으며, 그 안에 나체의 인간 무리가 들어가 있기도 한다.

여기에 당나귀, 기린, 유니콘 같은 동물이 등장해 낯설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기괴한 그림임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꿈에서 본 장면처럼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낙원과 지옥이 어우러진 전체 풍경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래서 보스의 지옥 그림을 들여다보면 갑자기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들 때문에 과연 이곳이 지옥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천국의 장면에서도 어딘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 그곳이 정말 천국인지 의심하게 한다.

영화 ‘킬러들의 도시’는 보스의 작품을 영화 메시지를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한다. 영화는 킬러 레이와 켄이 영국에서 암살 임무를 수행한 뒤 보스 명령에 따라 벨기에의 작은 도시 브뤼헤에 머물면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 킬러는 과묵하고 냉혹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이유를 묻지 않고 ‘살인’이라는 행위만 완수하면 말없이 떠나는 존재다. 그러나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매우 인간적이고 감정적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에 깊이 빠져들어 있다. 그들은 임무를 수행한 이후의 시간을 견디며 살인으로 이어진 죽음과 죄의 문제를 마주한다.

레이는 영국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실수로 어린아이를 죽였다. 아이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레이는 브뤼헤에 머무는 동안 죄책감에 시달린다. 더구나 아이를 죽인 일은 그들이 속한 조직의 규칙을 어긴 것이기도 했다. 보스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던 중 두 킬러는 미술관을 찾는다.

두 주인공은 브뤼헤의 그뢰닝겐 미술관에 소장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 ‘최후의 심판(1486년경)’ 앞에 멈춰 선다. 작품은 왼쪽·가운데·오른쪽 세 패널로 이뤄진 삼면화로, 크기는 크지 않지만 보스 특유의 세밀한 묘사가 빼곡히 담겨 있다. 왼쪽 패널에는 축복받은 영혼들이 나팔부는 천사들이 호위하는 배를 타고 천국으로 향하고 있다. 가운데 패널의 위에는 그리스도가 최후의 날에 심판을 내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과 가운데 아래에는 지옥에 떨어진 이들이 잔혹한 형벌을 받는 모습이 펼쳐진다. 죄 지은 자들은 오물 속에 허우적거리거나 좁은 감옥에 갇혀 있다. 불길 속에서 신체가 뒤틀리고 절단되거나 기괴한 생물에게 잡아먹히는 장면이 보인다. 하프 줄에 매달린 채 고통을 받는 인물도 눈에 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레이는 이 그림을 보자마자 지옥의 장면임을 직감하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가 지옥이라면, 나는 딱 맞는 곳에 온 거네.”

보스의 그림 속 인간들이 최후의 날 신의 심판을 기다리듯 영화에서 킬러들 역시 보스의 ‘심판’을 기다린다. 그들이 머무는 브뤼헤는 중세 모습을 간직한 평화로운 도시지만 레이에게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레이는 이곳에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죄 지은 인간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보스의 그림에 더 깊이 공감한다. 겉보기에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보스의 그림이 사실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을 그리고 있듯 평온한 브뤼헤 역시 레이에게는 지옥과 다름없는 공간이 된다. 영화는 보스의 그림을 통해 살아 있는 인간이 갇힌 지옥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형벌의 세계라니. 어쩌면 천국과 지옥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닌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심리적 공간일지도 모른다. 보스의 그림이 사후 세계와 죄를 다뤘다면 영화 ‘킬러들의 도시’는 이를 이어 받아 우리에게 지옥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죄의식이 어떻게 삶을 잠식해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아넣는지를 묻는다. 이렇게 볼 때 보스가 그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화 속에서 현대판 ‘최후의 심판’으로 다시 제기된다. 제작된 지 500년이 훨씬 지난 보스의 그림이 지금까지도 계속 이야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필자 김유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에서 교육을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배움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