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복을 입은 국군 장병들의 모습은 겉으론 대체로 비슷해 보인다. 같은 규율 아래 움직이고, 같은 목표를 향해 땀 흘리며, 정해진 일과를 함께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균질해 보이는 외피를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안에는 우리 사회의 가장 이질적인 삶의 궤적이 밀집해 있음을 발견한다. 출신지역과 성장 배경부터 학업 과정, 개인의 취향과 종교적 신념에 이르기까지 군대는 서로 다른 수많은 세계가 ‘국민의 군대로서 국가를 방위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함’이라는 가치 아래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존재들이 24시간 밀착해 생활하는 군 공동체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갈등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수준은 달라진다. 불교는 이 부딪힘의 순간을 단지 견뎌야 할 고통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며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드는 수행의 자리로 해석한다. 이런 관점은 오늘의 병영문화에도 유의미한 시사점를 던진다.
첫 번째 단초는 원효대사의 화쟁(和諍)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화쟁은 서로 다른 주장이 충돌할 때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자 관점이 지닌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더 높은 차원의 조화를 모색하는 태도다. 생활관의 사소한 습관 차이, 훈련 과정에서의 오해, 임무 수행 중 의견 대립은 군 생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지는 태도보다 ‘어떻게 같이 임무를 완수할 것인가’를 묻는 자세다. 상대의 말과 행동 뒤에 있는 사정과 맥락을 헤아리는 일은 약한 배려가 아니라 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실천이다.
두 번째는 의상대사가 『법성게』에서 밝힌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의 통찰이다.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있다는 이 가르침은 군 조직의 유기적 구조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하다. 불교의 인드라망 비유처럼 각각의 존재는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를 비추며 연결된다. 최전방에서 경계에 임하는 초병 한 사람의 긴장감에는 국가의 안위가 걸려 있고, 정비창에서 볼트 하나를 조이는 손길에는 전우의 생명이 달려 있다. 한 장병의 성실함은 부대의 신뢰가 되고, 한 사람의 소외와 슬픔은 공동체 전체의 사기와 전투력에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우애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 책임이 된다. 전우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 지친 동료에게 건네는 짧은 위로, 서로의 차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절제는 모두 공동체를 지키는 실질적 힘이다. ‘내가 곧 국군이며, 전우의 아픔이 곧 나의 책임’이라는 자각은 자비를 관념에서 행동으로 옮긴다.
군에서의 종교적 배려 역시 이러한 공존의 정신에서 이해될 수 있다. 휴일 아침 법당을 찾는 장병의 시간, 각자가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는 경직된 조직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않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문화야말로 건강한 병영의 조건이다.
군 생활은 결국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가장 치열하게 배우는 시간이다. 다름은 공동체를 해치는 균열이 아니라 국군이라는 큰 질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구성요소일 수 있다. 화쟁의 지혜와 일중일체의 통찰이 병영 안에서 살아 움직일 때 전우애는 감상이 아니라 전투력을 지탱하는 윤리가 된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힘이야말로 오늘의 국군이 지켜야 할 가장 깊은 결속의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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