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패션의 역사

여밈을 넘어, 권력을 꿰다

입력 2026. 04. 20   16:36
업데이트 2026. 04. 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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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예술
단추의 궤적을 찾아서 

두 면을 결속하는…계급적·미학적 욕망의 결정체
기원전 2000년경 조개껍데기로 시작 13세기 빛 발해 
황금·진주·상아로 세공, 귀족 부 과시 수단으로…
교복·군복·슈트 거치며 ‘규범의 상징’ 장치로 진화

단추로 빼곡하게 장식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머 재킷. 필자 제공
단추로 빼곡하게 장식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아머 재킷. 필자 제공


단추. 직물의 한 자락에 꿰매어 고정된 작고 단단한 조각을 맞은편 직물에 뚫린 길쭉한 틈새로 밀어 넣어 두 면을 결속하는 이 장치는 패션의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공학적 발명품이자 미학적 권력의 상징이다. 매일 아침 무의식적으로 채우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작은 원반형의 물체는 인류 복식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계급적, 미학적 욕망의 결정체다. 단추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은 곧 인류가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권력을 어떻게 시각화했는지를 되짚어보는 장엄한 여정이다.

단추가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곳은 기원전 2000년경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이다. 발굴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당시의 단추는 조개껍데기를 정교하게 깎아 만든 둥근 형태로 표면에 기하학적 문양들이 음각돼 있었다. 이 최초의 단추들이 현대와 같이 옷의 두 자락을 여미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고대인들에게 단추는 옷감 위에 꿰매어 장식하는 주술적 의미의 부적이자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사람들은 천을 몸에 두르고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하기 위해 단추 대신 금속제 브로치나 핀을 사용했다. 토가와 키톤처럼 풍성하게 주름을 잡아 몸을 감싸는 드레이퍼리(Drapery·의복의 입체감을 위해 원단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려 형성한 곡선형 주름) 형태의 의복 구조에서는 직물에 구멍을 뚫어 결속하는 단추의 역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을 구속하지 않고 직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우아함의 척도로 삼았던 고대 복식 철학 속에서 단추는 구조적 필수품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점묘적 예술 작위에 머물러 있었다.

13세기 중세 유럽에서 단추가 혁명을 맞이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의복은 헐렁한 튜닉을 벗어나 신체 윤곽에 밀착되는 3차원적 재단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푸르푸앵(pourpoint·14~17세기 남성용 상의) 같은 타이트한 의상을 고정하기 위해 촘촘히 배열된 단추는 귀족의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황금, 은, 진주, 상아, 보석으로 세공된 단추는 화폐를 대신할 만큼 엄청난 값을 지녔다. 옷 하나에 수백 개의 보석 단추를 다는 사치스러운 유행이 유럽 궁정을 휩쓸었다.

폼페오 바토니가 18세기 그랜드 투어를 하던 귀족의 모습을 그린 ‘토마스 윌리엄 코크의 초상’. 그림 속 주인공이 착용한 아비 아 라 프랑세즈의 전면부에 금사와 보석으로 세공된 단추들은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영국 홀크햄 홀 소장
폼페오 바토니가 18세기 그랜드 투어를 하던 귀족의 모습을 그린 ‘토마스 윌리엄 코크의 초상’. 그림 속 주인공이 착용한 아비 아 라 프랑세즈의 전면부에 금사와 보석으로 세공된 단추들은 권위를 상징하고 있다. 영국 홀크햄 홀 소장


단추의 화려함은 17세기 절대왕정 시대 루이 14세가 지배하던 프랑스 궁정에서 절정에 달한다. 루이 14세는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단추를 단 의상을 주문했다. 이 시기 단추는 귀족 남성들의 복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보석 장신구였다. 18세기를 거치며 남성 프록코트 위에서 위용을 과시하던 단추는 19세기에 걸쳐 이뤄진 산업혁명을 통해 사치품에서 공산품 영역으로 변모한다. 금형기계의 발명으로 황동, 뿔, 자개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단추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 단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군복의 규격화와 함께 일어났다. 금빛 황동 단추가 정갈하게 달린 해군 제복은 강인한 남성성을 상징했다. 이는 곧 현대 남성복의 상징인 블레이저와 테일러드 재킷의 탄생으로 직결됐다. 화려한 장식성을 덜어내고 실용성과 맞춤제작의 구조적 완전성을 지향하게 된 19세기의 단추는 역설적으로 옷의 실루엣을 통제하는 엄격한 규율의 장치로서 새로운 권위를 획득했다.

서양의 단추가 한반도에 상륙한 시기는 19세기 말 조선의 개화기다. 수백 년 동안 고름과 대님이라는 부드러운 끈의 묶음으로 의복을 여미고 고정해 온 조선 백성들에게 단춧구멍을 뚫고 단추를 끼워 넣는 기계적인 결속 방식은 그 자체로 거대한 문명사적 충격이자 서구 근대성에 대한 직면이었다. 고름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유연한 여유를 상징했다면 단추는 철저하게 계산된 구속과 효율을 의미했다. 1895년 을미의제를 통해 군복과 관복이 서구식으로 개편되면서 펄럭이는 넓은 소매와 바람이 통하는 여유로운 한복의 실루엣은 금속단추로 빈틈없이 잠겨진 군복과 양복의 수직적인 실루엣으로 급격히 대체됐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단추는 교복과 군복을 거쳐 비즈니스 슈트까지 일상의 규범을 상징하는 장치로 부상했다.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산업화 과정 속에서 단추는 일상복부터 최고급 맞춤복까지 폭넓게 변주됐다. 이제 서울은 세계의 맞춤제작과 아방가르드 패션이 교차하는 아시아 패션의 거점으로서 단추의 미학을 가장 민감하게 소비하고 재해석하는 도시 중 하나로 거듭났다.

2026년 SS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컬렉션에서 공개된 보석 장식 단추로 포인트를 준 새틴 소재의 바이어스컷 수트 재킷. 나뭇가지 모양의 금도금 황동 이어링에 큐빅 장식이 수놓아져 있다. 필자 제공
2026년 SS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컬렉션에서 공개된 보석 장식 단추로 포인트를 준 새틴 소재의 바이어스컷 수트 재킷. 나뭇가지 모양의 금도금 황동 이어링에 큐빅 장식이 수놓아져 있다. 필자 제공


2026년 SS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컬렉션에서 디렉터 대니얼 로즈베리는 과거 메종의 위대한 초현실주의적 유산과 엄격한 클래식이 만났을 때 어떤 극적인 시너지가 발생하는지를 증명했다. 특히 완벽하게 재단된 골드 메탈 비주(bijou) 버튼 재킷은 과거 창립자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즐겨 사용했던 ‘신체의 장식화’라는 테마를 재해석한 시도다. 이 재킷은 단추가 단순히 몸을 감싸는 것을 넘어 신체의 윤곽 그 자체를 재정의하는 초현실주의적 장식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의식적인 편안함을 거스르고 엄격한 구조와 긴장을 통해 인체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이 조각적인 설계야말로 오늘날 스키아파렐리가 제안하는 진정한 의미의 럭셔리이자 복식사적 가치다.

스키아파렐리가 단추를 초현실적인 비주로 승화시켰다면 세인트 로랑(Saint Laurent)의 앤서니 바카렐로는 단추의 본질적인 속성인 ‘권력’에 집중했다. 2026년 SS 컬렉션에서 그는 1970년대의 엄격한 파워 드레싱을 소환해 극도로 좁고 날카로운 실루엣의 더블브레스트 재킷을 선보였다. 재킷의 전면을 채운 4개의 커다란 금속 단추는 단순한 여밈을 넘어 착용자의 당당한 태도와 사회적 권위를 시각화하는 가장 강렬한 마침표로 기능했다. 이는 단추가 여전히 계급과 힘을 상징하는 유효한 미학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단추는 인류의 복식사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묵묵히 지탱해 온 가장 작고도 단단한 주춧돌이다. 기원전 고대 문명의 모래바람 속에서 발견된 조개껍데기에서 시작돼 중세 유럽의 재단혁명을 촉발했고, 절대왕정 귀족들의 탐욕스러운 보석 장신구를 거쳐 근대화의 엄격한 제식 규율로, 그리고 마침내 현대 패션의 런웨이 위에서 초현실적 예술 작품으로 끊임없이 변모해 온 이 작은 소품의 역사는 인간이 아름다움을 통제하기 위해 어디까지 정교해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거대한 서사다. 직물의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양측 옷감의 장력을 팽팽하게 견뎌내는 단추의 그 숭고하고도 침묵적인 물리적 기여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옷차림의 품위와 인체 구조를 수호해 온 궁극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추를 채움으로써 비로소 나태해진 육체를 긴장시키고, 세상과 마주할 완벽한 외관을 갖추게 된다.

단추. 그 차갑고 견고한 표면 위에는 복식이라는 캔버스 위에 권력과 예술의 본질을 아로새기고자 했던 수백 년의 장엄한 역사가 흠집 하나 없이 온전하게 응축돼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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