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영화
6888 중앙우편대대(2024)
감독: 타일러 페리
출연: 케리 워싱턴(차리티 아담스 소령), 오프라 윈프리(메리 맥클라우드 베순), 수전 서랜던(엘리너 루스벨트), 에보니 옵시디언, 밀로나 잭슨
“제2차 세계대전 중 100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해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여성들은 참전해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문학동네 펴냄
“편지가 없으면 사기도 없다”
“집에서 온 편지 한 통은 병사에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일깨워 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크 워커 미국 우정청장은 자신의 책무를 관통하는 명언을 남겼다. 1945년 2월 유럽 전선, 연합군은 승기를 잡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당시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이유는 고향에서 온 편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년 넘게 방치된 우편물은 무려 1700만 통. 영국 버밍엄의 군사우편기지 격납고에는 편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전사했거나 이미 귀국한 병사들의 편지는 물론 부대명은커녕 수신자 이름조차 제대로 적지 않은 것도 부지기수였다. 유럽 주둔군의 군번·출신지 기록카드와 일일이 대조해 수신자 신원과 부대를 확인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군 수뇌부는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를 난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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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급조된 특수부대가 있었다. 바로 6888대대(공식 명칭 6888th Central Postal Directory Battalion)였다. 간호부대를 제외하면 제2차 세계대전 중 해외로 파병된 유일한 흑인 여성 부대였다. 부대 표어는 ‘편지가 없으면 사기도 없다(No Mail, Low Morale)’였다. 장교 33명, 사병 822명 등 855명 전원이 흑인 여성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시 여성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1942년 5월 출범한 육군여군지원단(WAAC)은 전화 교환, 정비, 제빵, 우편, 운전, 속기, 타자 같은 비전투업무를 맡았다. 군복은 지급됐지만 군인 지위는 인정받지 못해 파병수당이나 사망보상금 혜택을 못 받는 임시 군무원 같은 신분이었다. 그나마 흑인 여성은 전체의 5.1%에 불과했고, 대부분 백인 여성 부대와 별도로 편성됐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의 장벽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90일의 기적, 그러나 잊힌 영웅들
영화 ‘6888 중앙우편대대’는 100세까지 생존했던 밀리 던 비지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다. 1945년 2월 855명의 흑인 여성이 영국으로 향한다. 6일간의 항해 동안 멀미로 녹초가 되고, 독일 U보트의 공격도 받았다. 글래스고항에 도착하자마자 V로켓이 부두에 떨어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들을 기다린 것은 쥐가 들끓는 열악한 창고. 전등도,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 24시간 3교대로 근무한다.
부대를 이끈 차리티 아담스 소령(케리 워싱턴 분)은 강인한 리더다. 그는 부대원들에게 “우리는 전선의 병사들을 위해 여기 있다. 그들에게 편지는 생명줄”이라고 격려한다. 하지만 백인 남성 장교들의 방해는 끊이지 않는다. “흑인 여자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조롱과 멸시가 이어진다. 급기야 상급 사령관이 직접 부대를 찾아와 아담스 소령의 책임을 물어 부대를 해체하려 한다.
이에 아담스 소령은 사령관 면전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제 시체를 밟고 가십시오.” 그가 신념으로 부대를 지키자 부대원들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1700만 통의 우편물 분류작업을 단 90일 만에 완수한 것.
영화는 단순히 우편물 분류작업만을 다루지 않는다.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증명하는 여성들의 연대와 투지를 그린다. 부대원 중에는 고향에서 약혼자를 기다리는 이도 있고,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개인의 아픔을 뒤로하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한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실제 6888 부대원들의 생전 모습과 기록 영상이 흐른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이들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참전용사 훈장도, 기념비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 군인들과 문란하게 지냈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참전 사실조차 숨긴 채 살아간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이들의 존재는 2009년 당시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의 언급으로 역사적 공로를 인정받기 시작한다. 2019년 미 육군이 비로소 표창을 수여하고, 2022년에는 미국 최고 영예인 의회 금메달이 추서됐다. 2024년엔 마침내 영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온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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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편지, 생명줄을 이어 주는 종이 한 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과 후방을 연결한 것은 군사우편이었다. 문제는 부피. 종이편지를 그대로 수송하려면 엄청난 공간이 필요했지만, 전쟁물자 수송에는 탄약과 식량이 언제나 우선이었다. 이에 미군은 1942년 6월 ‘V메일(Victory Mail)’ 시스템을 도입했다. 편지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해 축소 전송한 뒤 목적지에서 다시 인쇄하는 방식이었다. 이 기술 덕분에 기존 37자루 분량의 우편물을 단 한 자루에 담을 수 있었다.
이런 기술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수신자 확인이었다. 전선은 끊임없이 이동했고 병사들은 수시로 부대를 옮겼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친애하는 오빠에게’라고만 적혀 있는 이 간절한 편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여기서 6888 부대 역할이 빛을 발했다. 전사한 병사에게 온 편지는 유가족에게 전달했고, 포로가 된 병사의 편지는 적십자를 거쳐 보냈다. 그들이 처리한 1700만 통의 편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1700만 개의 연결이었고, 1700만 번의 희망이었다.
가슴을 울리는 편지도 많았다. 1942년 11월 설리번 가문의 다섯 형제는 해군에 입대했는데, 맏형인 조지가 해군 장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 형제는 언제나 함께였고, 함께 승리할 것입니다. 같은 배에 배치해 주시길 바랍니다.” 해군은 요청을 받아들여 형제를 USS 주노함에 배치했다. 하지만 과달카날해전에서 주노함이 침몰하면서 모두 전사했다. 어머니에게 전달된 전사통지서는 5통. 이 비극을 계기로 ‘유일 생존자 정책(Sole Survivor Policy)’이 만들어졌다. 형제나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도록 같은 부대에 배치하지 않는 원칙이었다.
지금처럼 e메일이나 영상통화로 실시간 소통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에 전쟁터의 편지가 가졌던 무게는 더욱 묵직했다. 종이에 눌러쓴 손글씨에는 타이핑된 문자가 담을 수 없는 온기가 스며 있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전쟁은 잠시 멈췄고 받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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