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자살 예방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실제로 육군은 2018년 12월 자살사고 예방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간부 전담 상담센터를 설치하는 등 전우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로 인해 육군은 최근 10여 년간 자살사망자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군종장교들은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다. 이는 군종병과를 향한 군의 요구이자 성직자로서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는 그동안의 고민과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군의 노력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제언을 하고자 한다.
오늘날 사회는 흔히 ‘포스트모던(Postmodern·탈근대)’으로 규정된다. 포스트모던이란 말 그대로 ‘모던(Modern·근대)’ 이후의 사회라는 뜻이다. 모던 사회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기준과 규범이 존재한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모던 사회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사회 모든 구성원이 결혼이라는 규범에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사회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왜 꼭 결혼해야 하지?” 그렇다. 포스트모던은 절대적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사라진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 권위와 전통은 끊임없이 질문의 대상이 된다. “왜 안 되는데?”라는 질문이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떨까? 필자가 만난 위기 상황의 전우들은 지속해야 할 삶의 이유를 묻고 있었다. 더러는 죽으면 왜 안 되는지를 묻기도 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단순히 죽으면 안 된다거나 죽음은 나쁘기 때문이라는 답은 여전히 유효할 수는 있겠으나, 보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에는 불충분한 답변이다.
현재 육군은 ‘how’라는 방법론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자살 예방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물론 ‘why’에 대한 답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기 상황 속 개인이 아닌 부대의 논리(부대의 전투력 저하, 대군 불신 초래 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자살 예방은 단순히 사고를 줄이고, 통계를 낮추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삶을 붙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한 명의 전우를 목적 그 자체로 여기며 깊은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하다.
이 일은 제도나 시스템 영역을 넘어 군을 이루고 있는 개인의 몫이다. 그리고 이 몫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빛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자각한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삶의 소중함을 확신하고 있을 때 그 확신은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위기 상황 속 전우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로 설득력 있게 전달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확신이 형성되는 데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는 한 인간의 가치를 조건이나 역할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보게 하는 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마태복음 16:26)는 예수의 가르침은 한 사람의 존재가 결코 대체될 수 없음을 일깨우는 깊은 통찰이다.
자살 예방은 기술이나 방법의 문제를 넘어선다. 군을 이루는 것은 결국 한 사람, 한 생명이다. 전우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풍토가 우리 안에 신념으로 굳어질 때 육군의 생명 존중 문화는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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