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제국주의 없이 선진국이 된 한국의 위대한 여정

입력 2026. 04. 14   15:42
업데이트 2026. 04. 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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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 발전 속도는 실로 놀라웠다. 일본도 당시로선 미국 페리 제독의 함포 외교에 눌려 개항과 불평등 조약을 강요당한 약소국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딱 50년 뒤인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는 5대 승전국으로서 열강 반열에 올랐다.

조선과 중국(靑)도 서양의 서세동점에 맞서 나름대로 변혁과 생존의 몸부림을 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에 서양 과학기술을 접목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는 조선과 중국에서 각각 동도서기(東道西器)와 중체서용(中體西用)으로 변주됐지만 여러 이유로 불발됐다. 홀로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기세는 그래서 더 대단했다.

이런 강력한 후광 효과 탓인지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심정은 복잡미묘하다. 대체로 기성세대는 일본의 국력이 예전 같지 않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저력을 경계한다. 반면 청년세대는 우리의 국력 신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일본을 친근한 이웃으로 보는 경향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일본과의 진정한 선린우호 관계는 여전히 멀어 보인다. 과거사 반성은커녕 아직도 툭하면 역사 도발을 일삼는 그들이다. 다만 그 행태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오히려 반면교사로서 우리 행로의 나침반을 삼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국 비교를 통해 더도 덜도 없는 객관적 현실을 깨닫고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 미래세대의 내공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

한국은 제국주의나 침략전쟁 없이 식민지에서 선진국이 된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무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우뚝 선 나라다. 이게 인류사상 얼마나 드물고 어려운 여정이었는지는 가까운 일본의 예를 반추하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과거 영광은 전쟁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막대한 배상금으로 야하타제철소 등을 세워 또 침략의 무기를 만들었다. 아울러 대만을 첫 식민지로 차지하며 ‘대일본제국’의 시작을 알렸다. 1904년에는 영국 지원하에 러시아마저 격파하고 조선을 병합하며 팽창 일로를 걸었다. 전리품 취득을 폭발적 성장의 동력으로 삼은 셈이다.

반면 신생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출발했다. 제국주의는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의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와 6·25 동족상잔의 폐허, 적대적 분단까지 천형처럼 주어지며 거의 모든 악조건이 겹쳤다.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워 새 조국을 만드세”라는 ‘새마을 노래’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 속에서 피어난 ‘한강의 기적’과 ‘K붐’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우리의 발전 모델이 독특한 또 다른 이유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이다. 1960년대 ‘경제발전 5단계설’로 유명한 월트 로스토는 개도국의 강압적 근대화를 강조했다.

이는 ‘선(先) 경제성장, 후(後) 민주화’나 ‘개발독재’의 학문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다수 신생독립국의 오늘날 모습은 그 이론의 실패를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당장은 효율적이지 않은 듯해도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필수적이다. 국가 주도 획일성을 벗어나 개인의 창발성과 다원주의를 통해 경제·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회복 탄력성을 강화한다. 한국민은 IMF 외환위기 때 자발적 금 모으기나 12·3 비상계엄의 신속한 무혈 진압 등을 통해 그 가치를 입증했다. 그 어떤 도전에도 두렵지 않은 우리의 집단경험이자 위대한 자산이다.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홍제표 CBS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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