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판도 바꾸는 드론·AI
헬골란트의 새벽에서 온 방패-해킹 불가능한 ‘양자암호 통신’
슈퍼컴보다 빠른 양자컴 등장
해킹 신호 즉시 알아채고 단절
새 암호 생성하는 최고 방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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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6월, 북해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독일의 외딴 바위섬 헬골란트(Helgoland).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이 황량한 섬에 23세의 독일 청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도착했다. 심각한 꽃가루 알레르기에 시달리던 그는 꽃가루가 없는 이곳으로 도망치듯 요양을 온 참이었다. 고립된 섬의 적막 속에서 그는 기존 물리학의 상식을 뒤집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보이지 않는 전자의 궤도는 잊자. 오직 관측 가능한 물리량만 믿자.”
며칠 밤을 꼬박 새운 끝에 계산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는 전율을 느끼며 섬의 벼랑 끝으로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했다. 인류의 과학사를 바꾼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고독한 섬에서 탄생한 이 난해한 물리학 이론은 인공지능(AI)과 드론이 지배하는 21세기 전장에 다시 호출됐다. 그것도 가장 강력한 ‘방패’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왜 하필 100년 전의 물리학일까? 그 답은 현대전 양상이 ‘화력’에서 ‘연결’로 바뀌면서 발생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바로 ‘보안의 취약성’ 때문이다. 우리가 믿었던 디지털 통신망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보여준 사건이 2011년 발생했다.
2011년 12월 4일 전 세계는 이란 국영방송이 공개한 화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면 속에는 미군의 최첨단 스텔스 무인정찰기, RQ-170 센티널(Sentinel)이 거의 파손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놓여 있었다. ‘칸다하르의 야수’라 불리며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도 기여한 미군의 1급 기밀 자산이 격추된 잔해가 아니라 멀쩡한 모습으로 적국 한복판에 전시된 것.
사건의 진실을 두고 양측의 주장은 엇갈렸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자신들의 전자전 부대가 드론의 통신 링크를 교란하고 GPS 좌표를 조작(Spoofing)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드론이 이란 공항을 아군 기지로 착각해 착륙하게 만든 ‘사이버 납치’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국방부와 제작사는 “단순한 기계적 오작동이나 통신 두절로 인한 자동 착륙(Failsafe)일 뿐”이라면서 “이란의 해킹 주장은 과장된 선전”이라며 기술적 결함설을 고수했다.
진실 공방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 사건이 남긴 교훈만큼은 섬뜩했다. 아무리 하드웨어적 은신(스텔스) 기능이 뛰어난 무기체계라도 신경망인 ‘통신 연결’이 뚫리면 적에게 고스란히 헌납되거나 아군을 겨누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통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암호 체계’마저 붕괴 직전에 놓였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대부분의 군사 통신은 RSA(Rivest-Shamir-Adleman)와 같은 공개키 암호체계를 사용한다. 이는 아주 큰 숫자를 소인수분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계산의 복잡성’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수만 배 빠른 ‘양자 컴퓨터’의 등장은 이 난공불락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암호가 종잇조각처럼 뚫리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경고한다. 적대국은 이미 지금 당장 해독하지 못하는 암호 데이터도 일단 수집해 뒀다가 훗날 양자 컴퓨터가 완성되면 열어보겠다는 ‘지금 수집하고 나중에 해독한다(Harvest Now, Decrypt Later)’는 전략을 실행 중이다. 수학적 방패가 한계에 봉착한 절체절명의 순간 100년 전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관측하면 변해버리는’ 양자의 성질은 해킹을 원천 차단하는 유일한 열쇠로 다시금 소환됐다.
궁극의 방패는 100년 전 하이젠베르크가 발견한 물리학 ‘양자 키 분배(Quantum Key Distribution·QKD)’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양자는 누군가 쳐다보는 순간 상태가 변한다. 마치 ‘비눗방울에 담긴 편지’와 같다. 해커가 내용을 훔쳐보려 건드리는 순간 예민한 비눗방울은 터져버린다. 수신자는 터진 흔적을 보고 도청 시도를 즉시 감지해 통신을 끊고 새로운 암호를 만든다. 이는 해커의 기술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기에 원천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무적의 방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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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이미 이 보이지 않는 방패를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은 2016년 세계 최초의 양자 통신위성 ‘묵자(墨子)’호를 쏘아 올리며 위성 기반 양자 통신망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과 유럽 역시 군사 지휘 통제망 방어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대한민국도 이 흐름의 최전선에 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방산기업은 양자암호기술을 상용화해 군 작전망에 적용하는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드론이 촬영한 전방의 고화질 영상, 지휘 벙커로 전송되는 작전 명령, 병사들의 무전기 신호까지 양자암호가 적용되는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군은 ‘하이브리드 보안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보안을 제공하는 QKD 장비는 덩치가 크고 비싸기 때문에 지휘소나 서버 등 고정 시설에 설치한다. 반면 무게와 전력 제한이 큰 정찰 드론이나 로봇에는 기존 컴퓨터에서도 양자컴퓨터의 수학적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 방식인 ‘양자 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PQC)’를 탑재한다. 최근 국내 연구진은 손톱만 한 크기의 양자 난수 생성칩(Quantum Random Number Generator·QRNG)을 개발해 소형 드론에 탑재하는 데 성공했다.
하이젠베르크가 헬골란트의 벼랑 끝에서 마주했던 새벽의 빛은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를 비추는 등대가 됐다. 전쟁 양상은 화력전에서 정보전으로, 그리고 이제는 그 정보를 지키는 ‘암호전’으로 진화했다. 적의 전자기파 방해 공격이 빗발치고 해킹 시도가 일상화된 미래 전장에서 우리 군의 드론이 흔들림 없이 임무를 완수하게 만드는 힘.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의 법칙, 양자역학에서 나온다. 우리가 만든 드론이 적의 어떤 유혹과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아군 명령에만 복종하게 만드는 기술, 양자암호 통신이야말로 진정한 자주국방의 완성이다.
다음 회에서는 생각만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미래 조종사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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