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군사명저를 찾아서
케네스 페인(2018). 『진화적 관점에서 본 전략과 전쟁: 원숭이에서 AI까지』
협력·경쟁 통해 상대 마음 추론 발전
힘의 집중·집중 회피 간 끝없는 경쟁
지금까지의 기술은 심리적 기반 유지
AI는 전략의 본질 자체 변화시킬 수도
과도한 효율 추구 예측 불가능성 증가
최근 중동전쟁에서 트럼프의 최대 강압 전략과 이란의 전략적 인내가 충돌하고 있다. 치킨게임 양상을 띠고 있는 이 대립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상하기 힘들다. 모두 심리적 상호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잣대로만 설명할 수 없는 전략의 심리학이 필요한지 모른다. 영국의 저명한 군사전략학자 케네스 페인이 『진화적 관점에서 본 전략과 전쟁: 원숭이에서 AI까지』에서 강조하는 것은 심리학에 기초한 전략의 진화다.
이 책의 가장 큰 기여는 전략을 단순한 군사기술이나 정책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진화적 산물’로 재정의한 데 있다. 저자는 전략을 “정치적 목적을 위한 폭력의 의도적 사용”으로 정의하면서도, 그 본질을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찾는다. 즉, 전략은 물리적 힘의 운용 이전에 타자의 의도, 신념, 의지를 이해하고 조작하는 인지적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략은 인간의 ‘사회적 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인간은 집단 내 ‘협력’과 집단 간 ‘경쟁’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 즉 ‘마음이론(theory of mind)’을 발전시켰다. 전략은 바로 이 능력의 집약적 표현이다. 적의 의도를 예측하고, 동맹의 행동을 조정하며,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인식될지를 계산하는 능력이 전략의 핵심이 된다.
또한 전략은 감정과 깊이 결부돼 있다. 공포, 명예, 복수심, 집단정체성은 전략적 판단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전략이 합리적 계산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확증 편향, 낙관 편향, 집단 편향에 의해 현실을 왜곡 인식하며, 이러한 인지적 한계는 전략적 오판으로 이어진다.
결국 전략은 합리적 선택이라기보다 “진화적으로 형성된 판단 체계”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저자의 논의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연결된다. 전쟁은 ‘의지의 충돌’이지만 그 의지는 생물학적·심리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전략의 본질은 기술이나 제도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
전략의 진화 과정
저자는 전략의 형성과 발전을 인류 진화의 흐름 속에서 설명한다. 초기 인간 사회에서 전략의 핵심은 ‘규모(scale)’였다. 단순 무기 환경에서 더 큰 집단은 전투력 집중을 통해 압도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인간은 혈연을 넘어선 협력을 발전시키며 대규모 집단 형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전략은 단순한 규모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약자는 기동, 기만, 기습을 통해 강자의 우위를 상쇄한다. 이는 전략이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적이며, 일방적 우위가 아닌 지속적인 적응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즉 전략은 ‘힘의 집중’과 ‘집중 회피’ 간의 끊임없는 경쟁이다.
문화는 이러한 진화적 기반 위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한다.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단순한 전술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규율, 집단 정체성을 반영하는 제도였다. 무기체계와 사회조직이 결합하면서 전략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는 기술이 전략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는 항상 인간의 심리적 기반 위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은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위치한다. 그는 전쟁을 감정, 우연, 이성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며 전략의 불확실성과 비선형성을 강조했다. 저자는 이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인간 전략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핵무기의 등장 역시 이 연속성을 깨지 못했다. 핵전략은 파괴력에서는 혁명적이지만 억제, 신호, 오인이라는 측면에서는 기존 전략과 동일한 심리적 구조를 유지한다. 즉 전략은 환경이 변화해도 그 본질은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전략의 심리적 기반 해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인공지능이 전략의 본질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화약, 산업혁명, 핵무기와 같은 지금까지의 기술 혁신은 ‘전쟁의 양상’을 변화시켰지만 전략의 심리적 기반은 유지됐다. 그러나 AI는 처음으로 이 기반 자체를 흔들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의 AI는 주로 전술적 수준에서 활용된다. 데이터 처리, 표적 식별, 의사결정 속도 측면에서 인간을 능가하며, 전장의 시간구조를 단축시킨다. 이는 관찰·판단·결정·행동(OODA) 루프를 압축시키고, ‘속도’ 자체를 핵심 전투력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AI는 여전히 인간이 설정한 목표를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언젠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올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문제는 범용 인공지능(AGI)이다. AGI는 목표 설정과 전략적 판단을 수행할 수 있으며, 이는 전략의 주체가 인간에서 기계로 이동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AGI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점이다. 인간 전략은 감정, 도덕, 사회적 규범에 의해 제약되지만 AGI는 이러한 요소에서 자유롭다.
이로 인해 기존 전략이론의 핵심 개념들, 즉 억제, 균형, 의지와 같은 요소들의 중요성이 약화될 수 있다. 억제는 상대의 인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비인간적 행위자는 이를 동일하게 해석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초고속 의사결정은 인간이 개입할 시간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까지는 AI의 위험이 ‘통제 불능의 기계’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인간의 의도를 과도하게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전략적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예측 불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의도하지 않는 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결국 AI는 전략의 진화 과정에서 최초로 ‘비인간적 전략’을 가능하게 하는 변수라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진화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해 온 전략의 본질적 성격, 인간의 심리작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략에서 연속성이 아닌 ‘단절’을 의미하며, 전쟁의 본질 자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지 모른다.
이 책은 전략을 인간의 진화, 심리, 문화, 기술이라는 통합적 틀에서 분석한 독창적인 저작이다. 특히 전략의 본질을 인간 인지에서 찾으면서도 AI의 등장이 그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제시한 점에서 중요한 학문적·실천적 함의를 지닌다. 이 책은 전략을 이해하려는 모든 군사 전문가에게, 전략의 진화 역사와 함께 AI기술이 가져올 변화의 본질적 의미를 개괄적으로 정리해 줬다는 점에서 명저의 반열에 든다고 본다. 시간이 없다면 서론과 7, 8장의 일독을 권한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