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부터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멋진 전투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의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2011년 3월 마침내 육군하사로 임관해 꿈을 이뤘다. 꿈에 그리던 전투복을 입고 보내는 하루하루는 무척 소중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굳은 각오로 임무에 매진했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손을 내밀어 준 전우들의 따뜻한 마음에서 전우애를 느꼈다. 시간이 흘러 중사로 진급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남편 또한 군인이었기에 서로 의지하며 조국을 향한 애국심, 군인으로서 명예심을 함께 느끼며 복무했다. 그 사이 우리에겐 세 번의 큰 선물, 사랑스러운 세 자녀가 찾아왔다.
부부 군인으로서 육아를 병행하는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 고민이 깊었다. 결국 남편과 상의 끝에 아이들과 가정을 우선순위에 두고 전역을 결심했다. 전역 후 가정을 돌보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는 군인으로서 못다 이룬 꿈이 남아 있었고 따뜻한 전우애가 그리웠다. 퇴근한 남편의 전투복을 마주할 때나 아이들을 등원시키며 마주치는 군인들을 보면서 문득 지난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럴 때마다 팽팽하게 다려진 전투복을 입고 임무에 매진하던 시절이 그리워졌고, 언젠가는 꼭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게 됐다.
현역 시절 같이 복무했던 전우를 통해 ‘장기 상비예비군’ 제도를 알게 됐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당시 퇴역 신분으로 전역해 예비군의 의무가 없었고, 상비예비군 지원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예비군으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이 마련됐다. 바로 ‘퇴역 간부의 예비군 전환 제도’였다. 나처럼 퇴역한 간부도 예비군으로 전환해 상비예비군을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원자격이 생긴 뒤 다시 군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찼다.
장기 상비예비군 합격 통지를 받던 날, 하사로 임관했던 그때의 전율을 다시 느꼈다. 전역 후 세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는데 ‘장기 상비예비군’ 제도는 잊고 지내던 군인의 꿈을 되찾아 준 소중한 기적이었다. 전투복을 입고 현역 때처럼 임무를 이행하며 혹한기 훈련까지 마치니 다시 군인이 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투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본 아이들 역시 “엄마도 아빠와 같은 군인이 됐다”며 자랑스럽게 맞아 줬다.
‘중사 최우리’로 다시 찾은 삶은 나와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다. 상비예비군과 현역은 신분 차이는 있지만 군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은 다를 게 없다. 각자 위치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또한 전우들과 부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예비역 중사 최우리가 될 것을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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