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판도 바꾸는 드론·AI
드론의 ‘보이지 않는 귀’ - 휴대전화가 좌표로 바뀌는 순간
전파 신호 방향·강도로 송출 위치 특정
통신사 해킹·감청해 실시간 이동 파악
앱이나 게임에 악성코드 심어 유포도
신호정보 위협이 미래 경계 개념 확장
A I 기반 다중 센서 융합으로 대응해야
|
2023년 1월 1일 밤 12시 직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마케예프카의 한 직업학교 건물에서 러시아군 병사들이 새해를 맞았다. 병사들은 고향 가족에게 신년 인사를 전하려고 금지령을 어기고 휴대전화를 켰다. 그로부터 수 분 후 하이마스(HIMARS) 로켓 6발이 건물을 관통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89명 사망을 발표했지만 현장 목격자와 우크라이나 측 추정치는 수백 명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세르게이 세브류코프(중장) 러시아 국방부 1부차관의 공식 발표였다.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대규모로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이 타격의 주요 원인”이라고 밝힌 것. 러시아군이 자국 병력 실수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드문 사례였다. 이 사건은 현대 전장에서 휴대전화가 통신 수단이 아니라 적에게 위치를 알리는 신호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2년 3월 13일 우크라이나 서부 야보리프 훈련장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다. 이곳에 주둔하던 외인부대 병력이 영국 국가코드(+44)를 사용하는 12~14개의 스마트폰을 작동시켰고,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Wagner) 요원들이 이를 탐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보는 러시아 정보기관을 거쳐 순항미사일 타격으로 이어졌고, 30명 이상이 사망했다. 두 사건 모두 병사 개인의 부주의라기보다 시스템적 취약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드론은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러시아군의 리어(Leer)-3 전자전 시스템은 카마즈(KamAZ) 트럭 지휘차량과 오를란(Orlan)-10 드론으로 구성되는데, 드론이 공중에서 가짜 기지국을 모방한다. 이 ‘떠다니는 기지국’은 반경 6㎞ 내 휴대전화를 탐지하고, 3㎞ 이내에서는 강제로 접속을 전환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 대의 드론이 수십 대의 휴대전화 신호를 동시에 포착하면 이는 병력 집결지로 평가돼 포병 좌표로 변환될 가능성이 크다.
전장에서 휴대전화를 추적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무선 기반 위치추적이다. 휴대전화가 송출하는 전파 신호의 방향과 강도를 측정해 삼각측량 방식으로 위치를 특정하거나 주변 무선 네트워크에 접속된 기기를 검색하는 방식이다. 둘째, 네트워크 기반 추적이다. 통신사의 코어 신호망 시스템을 해킹하거나 합법적 감청 권한을 통해 기지국 접속 기록과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셋째, 장치 기반 추적이다. 휴대전화에 설치된 모바일 앱이나 악성코드를 통해 GPS 좌표, 통화 기록, 연락처 등을 직접 추출하는 방식이다.
|
상업용 드론조차 이런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DJI의 에어로스코프(AeroScope) 시스템은 드론 조종자의 위치를 역추적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무선(SDR) 장비를 탑재한 드론은 다양한 주파수 대역을 실시간으로 스캔한다. 전장의 드론은 이제 눈뿐만 아니라 귀를 가졌다. 휴대전화, 무전기, GPS, 와이파이 등 모든 전파 신호가 탐지와 추적의 대상이 된다.
이 위협은 전방지역에서 직접적 함의를 가질 수 있다. 전투지역에서 휴대전화 사용 통제는 단순한 보안 규정을 넘어 전술적 생존의 문제가 된다. 리어-3와 비슷한 전자전 체계를 보유하거나 개발 중인 적성국이 존재할 때 이러한 우려는 더욱 현실화된다.
우크라이나군이 전투원에게 제시한 지침은 참고할 만하다. “전화를 걸 때는 부대 위치에서 최소 400~500m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고, 무장한 동료와 함께 가며, 민간인이 많은 곳에서만 사용하라. 심(SIM) 카드는 집에 두고 오라.” 통신 욕구와 작전보안 사이의 딜레마를 현실적으로 조정한 방식이다.
그러나 개인의 규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방 경계 부대가 매일 수십 명의 병력을 수㎞ 밖으로 보내 전화를 걸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적 대응이 필요하다. 부대 내 안전한 통신 인프라 제공, RF(Radio Frequency) 신호 차폐 시설 운용, 적의 전자전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는 감시체계 구축 등이 그것이다. 특히 가짜 기지국 공격을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경보하는 시스템은 병력 보호의 최전선이 될 수 있다.
휴대전화 위협의 또 다른 차원은 데이터 침투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장병들이 다운로드한 앱이나 게임에 악성코드가 숨어 있는 사례가 보고됐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어로 된, 무해해 보이는 앱을 배포하고 이를 통해 GPS 정보와 통화 내역을 수집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이버보안 당국은 “지역 주민이 제공하는 충전 카드나 코드를 받지 말라”는 경고까지 발령했다. 적 공작원이 악성코드가 심어진 충전 수단을 배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휴대전화는 신호 발신원일 뿐만 아니라 정보 유출의 통로가 된다.
미래 경계체계는 이러한 신호정보 위협을 인공지능(AI) 기반 융합체계로 대응해야 한다. 앞서 다룬 시각 기반 AI 경계는 이제 청각, 즉 RF 신호정보와 결합돼야 한다. 전자광학/적외선(EO/IR) 카메라가 물리적 침투를 탐지한다면 RF 센서는 보이지 않는 전파 신호를 감지한다. AI는 이 두 차원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통합하며 위협을 분류한다.
예컨대 경계 초소 인근에서 비정상적인 이동통신 신호가 감지되면 AI는 이를 가짜 기지국 공격으로 평가하고 경보를 발령할 수 있다. 동시에 영상 센서에서 포착된 소형 드론의 비행 패턴과 RF 신호 방향을 교차 분석해 드론 위치를 산출한다. 이처럼 다중 센서 융합은 단일 센서로는 어려운 입체적 상황인식을 제공한다.
신호정보 기반 경계는 기존 경계 개념의 확장이다. 과거 경계는 ‘보이는 것’을 막는 임무였다면 이제는 ‘들리는 것’, 즉 전파 영역까지 포괄해야 한다. 아군의 휴대전화 신호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동시에 적의 전자전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고 무력화하는 양방향 임무가 경계의 새로운 과제가 된다.
마케예프카의 사례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술적 취약점으로 전환되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휴대전화 한 대를 켜는 순간, 그것은 적의 포병에게 좌표를 송신하는 신호원이 될 수 있다. 경계의 미래는 병사 개인의 규율만으로는 지키기 어렵다. 신호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AI가 이상 징후를 자동 탐지하며 인간 지휘관이 최종 결심을 내리는 통합 경계체계가 이 위협에 대응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