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T/SEAL 전설, 고 한주호 준위 재조명
위험하고 힘든 업무 언제나 앞장
후배들 ‘먼저 들어가는 교관’으로 기억
국방일보 유튜브 통해 자세히 소개
해군특수전전단(UDT/SEAL) 한주호 준위는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수색작전에 자원해 바다에 들어갔다가 전사했습니다. 전역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이었고 작전투입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한 준위는 “아들 같은 해군 후배들이 바다에 있는데 내가 구하러 가야 한다”며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2026년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UDT/SEAL의 전설’ 한 준위는 어떤 군인이었는지 다시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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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으로 살다가 군인으로 떠나다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쯤.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피격됐습니다. 당시 승조원 104명 가운데 58명은 구조됐지만, 46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죠. 6·25전쟁 이후 북한의 군사 도발 가운데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남긴 ‘천안함 피격사건’입니다.
실종 장병을 찾기 위한 수색작전은 극한의 환경에서 전개됐습니다. 차가운 수온과 강한 조류로 인해 잠수는 하루 두세 번, 한 번에 30분 남짓으로 제한됐습니다. 시야는 손을 눈앞에 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고 합니다. 물속에 로프와 부유물이 얽혀 있어 잠수요원이 빠져나오지 못할 위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준위는 자발적으로 현장에 합류했습니다. 동료들이 여러 번 말렸지만, 그는 뜻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선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의 역할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바닷속에 있는 전우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그는 53세였습니다.
한 준위는 함정 탐색과 부이 설치 등 난도가 높은 임무를 맡아 반복해서 잠수에 나섰습니다. 수심 25m의 차가운 바닷속에서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잠수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 상황을 확인한 뒤 후배들에게 작업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 완전히 다 마치겠다. 국민과 실종 장병 가족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으니 내가 책임지고 해내겠다.” 수색 나흘째인 3월 30일 한 준위가 동료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준위는 함정 진입을 위한 밧줄 설치 작업 중 의식을 잃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미 해군 구난함 감압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다시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사인은 잠수병이었습니다. 한 준위가 평소에 후배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습니다.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 임무다’. 한 준위는 그 말처럼 살다가 그 말처럼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예우!
한 준위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자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빈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역대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방문했고 주한 미군 특수전사령관 등 미군 장병들도 찾아와 고인의 군인정신을 기렸습니다. 정부는 한 준위의 공적을 기려 충무무공훈장과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했습니다.
2010년 4월 3일 수도병원 실내체육관에서 한 준위의 영결식이 엄수됐습니다.
“이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식이 끝나고 운구 행렬이 장례식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UDT/SEAL 대원들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대원들은 한 준위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군가 ‘사나이 UDT’를 목이 터져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최정예 특수부대 대원들도 이날만큼은 눈물범벅으로 목이 멘 채 노래를 이어갔습니다. 한 준위의 대선배인 백발의 노병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군가를 불렀습니다. UDT/SEAL 역사에 길이 남을 마지막 예우였습니다.
“이런 건 노땅의 몫이야”
한 준위는 1975년 해군부사관으로 임관해 이듬해 UDT/SEAL 교육을 수료한 이후 34년간 특수전 분야에서 복무한 베테랑이었습니다. 특히 UDT/SEAL 교육훈련대 교관으로 18년 이상 근무하며 2000명이 넘는 특수전 요원을 양성했습니다. 후배들은 그를 ‘항상 가장 먼저 들어가는 교관’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9년 청해부대 1진 파병 당시에도 한 준위는 부대 내 최고령이었지만, 해적 대응작전에 직접 참가해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한 준위는 ‘해군 UDT/SEAL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렸습니다. 함정 프로펠러 아래에 들어가 이물질을 제거하는 고된 작업도 후배들을 시킬 법했지만 직접 했습니다. 위험하고 힘든 임무에 가장 먼저 나설 때면 후배들에게 “이런 건 노땅의 몫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한 준위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장비 개선에도 기여했습니다. 표적기, 보호장비 등을 직접 고안했는데 특히 침투용 사다리는 세계인이 찬사를 보낸 기념비적인 인질 구출작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을 소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서해 55용사
오늘날 평온해 보이는 서해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천안함 46용사와 그들을 찾기 위해 바다로 들어간 한주호 준위,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명의 해군 장병,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전사한 2명의 해병대 대원의 희생과 지금 이 시간에도 목숨 걸고 바다를 지키는 우리 장병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올해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그들의 이름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안승회 기자
“후배들이 이어갑니다” 한 준위에게 보내는 편지
해군특수전전단 함춘오 원사
“하늘에 계신 한주호 준위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름만 불러도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지는 나의 전우, 나의 선배님. 준위님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저희 후배들이 끝까지 이어가겠습니다. 세계 최강의 UDT, 불가능을 모르는 UDT 대원들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하늘에서 저희 UDT 늘 지켜봐 주시고 보살펴 주십시오. 필승!”
해군특수전전단 김진수 원사
“한주호 준위님은 늘 가장 앞에 섰던 분이었습니다. 물에 들어갈 때도 항상 먼저 들어가셨습니다. 겉으로는 엄격하고 무뚝뚝해 보이셨지만, 뒤에서는 인자한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쌓여 준위님은 저희 모두의 롤모델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저희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준위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UDT를 위해 끝까지 혼신의 힘을 쏟겠습니다.”
고 한주호 준위의 장녀 한태경 씨
“군인이라는 걸 누구보다 행복해하고 늘 자랑스러워했던 우리 아빠. 천안함 장병들이 물속에 있다는 뉴스를 보고 눈물 흘리던 모습, 그리고 자식 같은 장병들 구하러 가겠다던 모습이 아직도 생각 나. 아빠한테 남편도 소개해주고 싶고, 우리 아기들도 보여주고 싶어. 아빠가 보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늘에서 지켜보듯이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어요. 엄마, 오빠랑 셋이 똘똘 뭉쳐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다가 아빠 옆으로 갈 거니까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랑 행복하게 시간 보내고 계세요. 사랑합니다.”
안승회 기자의 ‘군금해’는…
유튜브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어선 국방홍보원의 대표 영상 콘텐츠, ‘안승회 기자의 군금해’가 국방일보 독자들을 만납니다. 병영 생활, 무기체계, 국방 정책 등 군 전반의 다양한 현안을 현장 중심으로 조명합니다. 지면에 담기 어려운 생생한 현장 모습, 추가 인터뷰 등 보다 자세한 내용은 국방일보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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