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3월 꽃샘추위가 남긴 죽비 소리

입력 2026. 03. 26   14:49
업데이트 2026. 03. 2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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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 언 땅을 녹이며 들려오는 꽃 소식은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동토를 뚫고 피어난 매화와 곧 터질 듯 부푼 벚꽃 봉오리를 바라보며 새봄의 시작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따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외려 한겨울의 추위보다 더 매섭게 살을 파고든다. 그 매서운 바람은 나에게, 우리에게 시림과 아픔을 줬던 16년 전 3월을 상기시킨다. 

2010년 3월 당시 대학 교정을 누비던 평범한 학부생이었다. 학생회 활동으로 캠퍼스의 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천안함이 피격됐다는 속보가 전해졌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학교 한편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에게 검은 리본을 나눠 줬다. 그때 천안함 피격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일로 분류됐다. 하지만 내내 분향소를 지키며 이 사건에 관해 알아가면서 사진 속 대다수가 나와 비슷하거나 같은 나이임을 알게 됐다. 그들이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감내했을 고독과 마지막 순간에 마주했을 차가운 심연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타인의 일로만 여겼던 비극이 ‘내 친구의 아픔’으로 전이되던 그 밤, 이름 모를 전우들을 향한 깊은 부채감을 느꼈다.

16년이 지난 지금 해군 구성원으로 그날의 용사들이 있었던 곳에 그들의 아픔을 온전히 담은 채 서 있다. 그 ‘차가운 바다’는 나와 동료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자 전장이 됐다. 많은 시간이 지난 만큼 그날의 슬픔의 무게와 농도는 옅어졌다. 그렇다고 우리의 사명까지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비극이 재연되지 않게 철통같은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 앞으로의 세대가 평화로운 바다로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바로 그날의 진실과 함께했던 우리 선배 세대의 몫이자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다. 우리가 경험하고 느꼈던 각자의 비장함을 이젠 현장의 완벽한 대비태세로 녹여 장병들의 느슨함을 경각심으로, 경각심을 필승의 신념으로 바꾸는 게 3월의 바다 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숭고한 임무다.

불교에서 수행 중인 동자승이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나태해질 때 스님의 ‘죽비’ 소리가 동자승의 잠을 깨우고 수행에 집중하게 만든다. ?3월의 꽃샘추위는 어깨를 내려치는 서늘한 죽비 소리와 같다. 따스한 봄볕에 취해 잠시라도 경각심을 잃으려 할 때마다 스스로 이 평화의 바다는 어디에서부터 오는지를 되묻는다.

?우리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마음가짐은 낯선 것이 아니라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그 마음가짐일 수 있다. 매서운 칼바람이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인 봄이 오듯이 이 시기를 진중히 여기고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찾는 것, 그 시간을 가져 본다.

이찬희 소령 해군8전투훈련단 81전대
이찬희 소령 해군8전투훈련단 81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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