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넘은 시각, 어린 두 아들을 재우려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웠을 때 정적을 깨고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전화를 받는 걸 보니 아들, 너는 아니구나.” 안도감이 섞인 그 짧은 한마디가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곧이어 TV 속보로 믿기지 않는 비보를 접했다. 지체 없이 차 시동을 걸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10년 3월 26일, 해군 장교로서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항적을 남긴 그날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천안함의 모항인 해군2함대 소속 서울함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부대에서 경례를 나누고 함께 땀 흘리던 전우들이 차가운 바다에 잠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군복이 수의가 됐다’는 어느 시인의 구절은 잔인한 현실이 됐고, 46명의 용사와 고(故) 한주호 준위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2함대 일원으로서 부대에서 마주치던 유가족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지켜봤다. 자식과 남편을 잃은 이들의 절규는 군복을 입은 사람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전우들의 마지막 길을 지키며 올렸던 거수경례에는 조국수호 맹세와 떠나보낸 동료를 향한 미안함이 교차했다.
해군 장교의 길을 걸어온 지 어느덧 20여 년. 계급장의 무게가 늘어갈수록 그날의 기억은 더욱 뚜렷해지지만, 세상은 조금씩 그날을 잊어 가는 듯해 안타까움이 앞선다.
사건 다음 날 외삼촌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도 그 기억의 한 조각이다. 16년 전 그날 밤, 당신의 치킨집에서 TV 뉴스 속 천안함을 가리키며 “저기 내 아들이 있다”고 목 놓아 울던 단골손님. 그 비통한 슬픔을 본 외삼촌은 매년 3월이면 해군 조카인 내 안부를 묻곤 하신다. 외삼촌의 전화는 우리 바다를 지키는 이들을 응원하고, 서해에서 산화한 용사들을 위로하는 외삼촌만의 방식일 것이다.
‘REMEMBER PCC-772’. 천안함재단의 슬로건처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북한 도발에 맞서 서해를 사수한 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평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이어받아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명예로운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서해 최북단 백령도 어딘가에 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이 그들의 값진 헌신이 언제나 불타오를 수 있도록 우리 가슴에 깊이 새기고 조국수호를 위한 군인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누군가가 기억하지 못할 때’라는 말처럼 그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천안함의 항해는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계속돼야 한다.
따스한 봄기운과 쌀쌀한 바람이 교차하는 3월의 아침 출근길,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46+1’이라는 숫자를 깊이 새긴다. 그들이 내준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도 나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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