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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그 숭고한 ‘디테일’에 대하여

입력 2026. 03. 25   16:57
업데이트 2026. 03. 2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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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희 중위 육군35보병사단 이순신여단
임소희 중위 육군35보병사단 이순신여단



흔히 태극기를 유교적 질서나 동양철학의 정수로 이해하지만, 태극기의 역사에는 파격적이었던 민주주의의 씨앗과 처절한 생존 기록이 숨겨져 있다. 매일 연병장에 게양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자문한다. ‘태극기는 언제 가장 뜨겁고 찬란하게 보였을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당시 태극기는 특정 권력층의 상징이 아닌 백성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하는 ‘민초의 깃발’이었다. 독립군이 가슴에 품었던 태극기들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규격화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어떤 태극기는 태극문양이 거친 파도처럼 휘몰아치고, 어떤 것은 사괘 위치가 뒤바뀌어 있다. 이는 단순한 실수나 정보 부재가 아니었다. 멈춰 있는 평화가 아니라 침략에 맞서 요동치는 민족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였으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태극’이라는 중심만큼은 결코 놓지 않겠다는 간절함의 표현이었다. 형태가 완전하지 않은 깃발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붙들고 나라의 이름을 되찾고자 노력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태극기 제작기준이 법으로 명확하게 정해지며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태극기가 완성된 것이다. 매일 전투복에 태극기를 달고 임무를 수행한다. 균일한 색상과 비율로 제작된 작은 패치이지만, 손으로 그렸던 거친 선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선조들의 조국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단순한 한 장의 태극기 패치가 아니다.

또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를 향한 외교적 메시지였다. 고종이 미국인 외교 고문 데니에게 하사했던 ‘데니 태극기’의 사례는 태극기가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의 독립의지를 알리는 평화의 선언서였음을 증명한다. 서구인의 눈에도 태극기는 일제에 저항하는 한민족의 고귀한 품격으로 비쳤던 것이다.

107년 전 3·1절 거리로 쏟아져 나온 선조들이 총칼 대신 종이에 그린 태극기를 손에 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태극기는 그 자체로 죽음을 각오한 용기이자 반드시 되찾아야 할 미래였다.

오늘날 우리가 전투복에 부착한 태극기는 벨크로로 손쉽게 탈부착할 수 있을 만큼 가볍게 여겨지는 듯해 안타깝다. 군복을 입고 있는 우리만이라도 그 속에 담긴 역사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잊지 말고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의 오른쪽 어깨에 부착된 태극기는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닌 무수한 독립군과 병사들의 피로 지켜 낸 ‘독립과 자유의 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3월은 3·1절을 비롯해 서해수호의 날, 안중근 장군 순국 등 뜨거운 태극기의 흔적들로 채워진다. 선조들이 끝내 내리지 않았던 그 깃발을 이젠 우리가 가장 굳건하게 받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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