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를 찾아서
마크 갈레오티. 『모든 것의 무기화: 전쟁의 새로운 방식에 대한 현장지침서』
Mark Galeotti, 2023. The Weaponisation of Everything: A Field Guide to the New Way of War (Yale University Press). pp. 248.
전쟁, 군사 넘어 사회 전체 경쟁으로
특정 시점 아닌 지속적 긴장 상태 유지
중동전쟁 등 직접적 군사 충돌 있지만
비군사적 수단 활용 상대 압박 상시화
전쟁·평화 구분 모호 다양한 갈등 지속
전쟁을 대비하는 이들은 통상 물리적 싸움을 상정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파괴적인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도 많다. 미국은 오랫동안 경제제재로 이란을 괴롭혀왔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세계 경제를 무기화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제 모든 것이 무기화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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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크 갈레오티는 러시아 전문가로, 전쟁과 무기 개념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념에 반대한다. 오히려 전쟁이 군사 영역을 넘어 정치·경제·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고 주장한다. 핵심 논지는 전쟁이 특정 시점에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수단이 결합된 ‘지속적 경쟁 상태’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현대 갈등을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흔히 언급되는 하이브리드 전쟁이나 회색지대 갈등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과거에도 존재했던 비군사적 수단이 현대의 기술 환경 속에서 강화된 결과라고 본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외교·선전·경제 압박을 결합해 경쟁했던 사례는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즉, 현대 국제정치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경쟁 양상은 단절이 아니라 ‘전략적 행위의 재구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현대 국제정치의 본질을 전면전이 아니라 ‘전략적 경쟁’으로 규정한다. 냉전 종식 이후 국제사회는 명목상 평화 상태에 진입했지만, 실제로는 국가 간 경쟁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특히 강대국 간 직접 충돌 비용이 증가하면서 경쟁은 점점 더 간접적이고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경제제재, 기술 통제, 정보 조작, 외교적 압박 등은 이러한 경쟁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국제정치가 더 이상 전쟁과 평화의 이분법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전쟁을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군사적 충돌에 한정됐던 전쟁 개념이 이제는 정책 영역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국가가 다양한 문제를 경쟁적 관점에서 접근하게 만든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단순한 수사적 현상이 아니라 정책 수단의 선택과 전략적 사고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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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이란에서처럼 직접적 군사 충돌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경향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군사력 사용의 회피와 간접적 압박 수단의 확대다. 첨단 무기체계의 비용 증가와 정치적 부담, 국제 규범의 제약은 국가들이 전면전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결과 국가들은 상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보다 정교한 비군사적 수단을 활용하게 됐다.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는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국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다.
이 같은 논의는 2014년 크림반도 사태에서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러시아는 군사력과 비군사적 수단을 결합해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정규군과 비공식 세력의 병행 투입, 정보전을 통한 여론 형성, 정치적 불안정 조성은 단일 작전이 아니라 복합 작전 형태로 이뤄졌다. 이는 현대 갈등이 단순한 군사 작전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이 통합된 다영역 경쟁임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군사 영역을 넘어 다양한 행위자의 참여를 촉진한다. 민간 군사 기업, 글로벌 기업, 사이버 조직 등은 국가와 결합하거나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러시아 와그너 그룹과 같은 사례는 국가가 비공식 조직을 활용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국가 중심 국제정치가 점차 혼합형 행위자 구조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 영역 역시 현대 갈등의 핵심 전장으로 부상한다. 글로벌 공급망과 금융 네트워크가 긴밀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경제적 수단은 강력한 압박 도구가 된다.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 전략이나 미국의 금융 제재는 군사력 없이도 상대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경제와 안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국가 전략에서 경제적 수단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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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영역에서는 경쟁 양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는 빠르게 확산되며 개인과 사회의 인식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외부 개입 의혹은 정보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의 중심은 물리적 전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과 판단이 형성되는 인지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과 규범 역시 전략적 경쟁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국제법은 더 이상 중립적 규칙이 아니라 국가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압박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나타난 법적 공방은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들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법적 정당성을 통해 국제적 지지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힘의 개념이 물리적 능력에서 ‘정당성 기반 권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화와 정체성 역시 중요한 경쟁 요소로 등장한다고 지적한다. 문화는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을 형성하며, 정치적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문화는 단순한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장기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정치에서 경쟁 대상이 물리적 차원에서 인지적·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개념은 불안정성 자체의 전략적 활용이다. 일부 국가는 완전한 승리를 추구하기보다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두는 전략을 선택한다. 중동 지역의 지속적인 갈등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며 상대의 자원을 분산시키고 정치적 결속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이러한 방식은 명확한 전쟁 없이도 상당한 전략적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 불안정성의 무기화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현대 국제정치가 전면전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단이 결합된 지속적 경쟁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런 환경에서는 전쟁과 평화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며,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된다. 이는 기존의 군사 중심 안보 개념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보다 포괄적인 대응체계가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전쟁을 군사적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기존 관점을 넘어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경쟁 구조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또 전쟁과 무기체계를 이해하는 데 보다 거시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다. 전쟁은 더 이상 전장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전쟁은 정보 공간, 경제 구조, 사회 시스템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며 이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국가안보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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