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영웅과 3번의 만남

입력 2026. 03. 19   15:30
업데이트 2026. 03. 19   16:34
0 댓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현장은 전례 없는 감동으로 물결쳤다. 100세의 노병, 앨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대령이 미국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훈하는 순간 장내는 정파를 초월한 기립박수로 가득 찼다. 70여 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창공을 누볐던 한 청년 조종사의 헌신이 마침내 최고의 영예로 빛을 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감회는 남달랐다. 대령님과 3번에 걸친 소중한 인연이 뇌리를 스쳐 갔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만남은 2023년 1월 미 샌디에이고 자택에서 이뤄졌다. 주미 국방무관부에서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의 감사장을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였다. 90대 중반임에도 대령님은 놀랍도록 건강하셨으며, 1952년 11월 18일의 기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F-9F 팬더 전투기로 함북 회령 일대를 폭격하던 중 소련의 미그-15 7대에 포위된 채 35분간 홀로 사투를 벌여 4대를 격추한 전과였다. 탄약이 바닥난 뒤 복귀하던 중 무전기 고장으로 아군의 오인사격까지 받았으나 끝내 비상착륙에 성공했다. 이튿날 기체에는 263개의 총알구멍이 남아 있었다. 이 전투는 소련군 무전 감청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이유로 50년 넘게 기밀로 분류돼 가족에게조차 입을 열지 못했다고 하셨다.

더욱 인상 깊었던 건 자신의 손에 희생된 상대편 조종사들에게 인간적 연민을 품고 수십 년간을 살아왔다는 고백이었다. 영웅의 위대함은 용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깊은 인간적 성찰에도 있음을 느꼈다. “나 혼자가 아닌 전우들과 함께 이뤄 낸 결과”라며 공을 돌리시던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두 번째 만남은 그해 4월 미 워싱턴DC에서였다. 대한민국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 수훈을 위해 샌디에이고에서 먼 길을 오신 대령님과 1박2일을 함께하며 지역구 의원 초청으로 미 의회 곳곳을 동행했다. 지나치는 이들마다 자발적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감사를 전하는 모습은 국가가 영웅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 줬다.

세 번째 만남은 2024년 12월 미 로스앤젤레스 출장길에 샌디에이고 자택을 다시 찾아 98세 생신을 축하드린 자리였다. 건강에 좋은 인삼과 100세 이상 장수하시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100세주(酒)’를 선물로 준비했다. 대령님의 손을 잡고 “대령님의 100세 생신에는 인생의 2막을 시작하는 시기이니 그때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약속드렸다. 대령님은 환한 미소로 나의 별명인 ‘Napoleon’을 부르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셨다.

그의 명예훈장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하는 살아 있는 역사다. 대한민국이 먼저 그의 헌신을 기억하고 태극무공훈장으로 예우했고, 마침내 그의 조국 미국이 최고의 영예로 화답했다. 이 아름다운 순환은 동맹이 단순한 조약을 넘어 서로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됨을 대변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름 모를 수많은 영웅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다. 영웅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품격이며, 동맹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길임을 3번의 만남으로 다시 한번 깨닫는다.

김용선 예비역 육군대령 전 주미 국방군수무관
김용선 예비역 육군대령 전 주미 국방군수무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