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당신의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말해 보세요

입력 2026. 03. 12   15:45
업데이트 2026. 03. 12   16:15
0 댓글

우리는 종종 ‘오글거린다’는 표현 뒤로 숨곤 한다. 특히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 가치를 진지하게 논할 때 이 ‘오글거림’이란 감정적 저항선에 부딪힌다(‘오글거리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좁은 그릇에서 적은 양의 물이나 찌개 따위가 자꾸 요란스럽게 끓어오르다’ ‘작은 벌레나 짐승, 사람 따위가 한곳에 빽빽하게 많이 모여 자꾸 움직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용자 누구나 새로운 어휘와 뜻풀이를 제안할 수 있고 일련의 절차를 거쳐 사전에 등재될 수 있는 개방?참여형 사전인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부끄럽고 남사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는 느낌이 들다’로 올라와 있다).

한 공공기관에서 위기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며 만난 분이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 왔다.

“제 역할에 어떤 공적 가치가 있는지 잊고 살았습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건 오글거려 생각도 못 했는데, 코치께서 내 일의 가치를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큰 울림이 됐습니다. 울컥했던 기억도 납니다. 말씀하신 대로 알고 있는 것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사이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잘 연습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 직무에 관해 설명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어서다. 그러나 그 직무가 어떤 공적 가치를 갖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치를 잊고 지냈을 수도,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그렇지 않음에도 입 밖으로 내려 하니 왠지 부끄럽다. 마음속 깊이 있으면 됐지 굳이 드러내나 싶다. ‘안다고 여기는 것’과 그것을 ‘나의 언어로 정돈해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머릿속에만 머무는 가치는 자칫 휘발되기 쉽지만, 글이나 말로 표현해 볼수록 단단한 뿌리를 내린다. 소리 내 보는 용기를 갖게 되면, 이는 또 하나의 책임감이 돼 나를 지탱하게 만든다.

군인에게 ‘위국헌신(爲國獻身)’은 익숙한 단어다. 정작 본인이 수행하는 임무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떻게 기여하는지 동료에게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다수가 손사래를 치기 마련이다.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하느냐”며 겸손을 드러내기 급급하다. 하지만 그게 지나쳐 자칫 내가 수행하는 공적 역할의 가치를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지 살펴야 한다. 내 일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스스로 존중할 때 비로소 옆에 있는 타인의 헌신,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공적 말하기를 통한 소통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신뢰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위기상황에서 지휘관의 말 한마디가 부대원의 사기를 좌우하고, 평시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단단한 결속력을 만든다. 이는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적절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직무에 담긴 공적 가치를 마음에 담아 소리 내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권한다. 표현이 거창하고 화려할 필요는 없다. 숙고해 찾은 자신의 언어로 헌신을 구체적으로 자각하며 얘기할 때 그 말에는 보이지 않는 무게와 권위가 실린다.

이제 ‘오글거린다’는 핑계 뒤로 숨지 말자. 내 직무의 가치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남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일에 대한 가장 높은 수준의 존중이며, 함께 그 일을 해 나가는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뜨거운 격려다.

정연주 공적말하기연구소 대표
정연주 공적말하기연구소 대표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