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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다짐 … 지키겠다는 마음 이어간다는 마음

고은정

입력 2026. 03. 10   17:16
업데이트 2026. 03. 1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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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 평택·아산

호국 유산 간직한 ‘충남 아산’
호국 정신 계승한 ‘경기 평택’

충무공 정신 되새겨 
현충사서 40㎞ 남짓 
평택 군항 해군2함대
제1·2연평해전 기려
“선배 전우들처럼…” 
서해수호 의지 다져

해군2함대 장병들이 서해수호관에 마련된 ‘서해수호 55용사’의 명패를 만지며 서해수호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해군2함대 장병들이 서해수호관에 마련된 ‘서해수호 55용사’의 명패를 만지며 서해수호 의지를 다지고 있다.



“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힘을 다해 죽으나 사나 이를 따르리라(安國家定社稷 盡忠竭力 死生以之).” -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반드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 『난중일기』 중 ‘속정유일기’

군인의 길은 늘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이를 가장 절실하게 극적으로 보여 준 군인이었다. 장군이 나고 자라 유해로 돌아온 충남 아산시는 ‘이순신 정신’을 느낄 수 있는 ‘호국의 보고(寶庫)’다.

아산이 ‘호국의 유산’을 간직한 장소라면 아산과 맞닿은 경기 평택시는 ‘호국의 계승’이 이뤄지는 곳이다. 평택에는 ‘이순신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해군, 그 가운데도 서해수호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해군2함대가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평택 군항에 닻을 내린 2함대는 제1·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등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서해를 든든히 지켜 나가고 있다. 지난 4일 만난 2함대 장병들에게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던 이순신 장군과 선배 전우들의 굳건한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현충사 전경.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현충사 전경.



아산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고즈넉한 언덕에 세워진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나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스스로를 갈고닦았던 고택을 중심으로 조성된 사당이다.

현충사의 시작은 아산 유생들에게서 비롯됐다. 숙종 32년인 1706년 유생들은 장군을 위한 사당을 고향 아산에 세워야 한다고 청했고, 조정 역시 뜻을 같이했다. 숙종은 이듬해 직접 ‘顯忠祠(현충사)’라는 현판을 하사하며 장군의 공을 기렸다.

위기도 있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 철폐령이 첫 번째다. 그로 인해 결국 헐린 사당터는 40년 가까이 방치되다가 을사늑약에 분노한 지역 유림들이 1906년에 세운 유허비만 빈터를 지키게 됐다. 일제 통치가 절정에 이르렀던 1931년엔 종가의 형편이 어려워지며 장군의 묘소와 위토(제사 비용 마련을 위한 토지)마저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였다. 이때 구국의 영웅인 장군의 혼을 되살려야 한다는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민족의 열망 덕분에 종가는 오히려 빚을 갚을 수 있었고, 1932년 고택 인근에 다시 현충사를 세웠다. 1966년엔 현충사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아산시내가 내려다보이는 54만㎡ 부지에 새 현충사가 들어섰다.


현충사 정문을 지나면 옆으로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선 장군이 실제로 사용했던 요대, 복숭아 모양 잔과 받침, 옥로(머리 장신구), 장검, 서간첩(편지 묶음) 등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직접 볼 수 있다. 국보 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난중일기』도 이곳에 있다. 장군이 활약했던 임진왜란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관련 자료도 볼 수 있다. 최근 추세에 맞춰 새롭게 마련한 미디어아트는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현충사는 부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길을 따라 조성된 노송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장군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현충사는 장군의 영정이 아산을 내려다보도록 구성됐다. 영정 주변으로는 해전, 집무 모습, 백의종군 등 장군의 인생을 묘사한 그림이 놓였다. 

 

현재 장군을 기리는 사당은 전국 23곳에 이른다. 대부분 장군의 부임지 등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현충사는 이 중에서도 장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곳, 장군의 삶만큼 모진 굴곡을 겪고 끝내 화려하게 꽃피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매년 충무공 탄신일이 있는 4월이면 호국정신을 다지기 위해 많은 이가 찾는 이유가 있었다. 

 

 

해군2함대 장병들이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해군2함대 장병들이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현충사에서 약 40㎞, 차로 30분 거리를 달려가면 평택 2함대에 도착한다. 2함대는 서해수호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우리 해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한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기념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의 호국 의지를 기릴 수 있는 안보교육 현장이기도 하다.

2함대는 서해수호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서해수호관과 피격된 천안함 선체를 확인할 수 있는 안보공원을 운영 중이다. 이곳은 개관 이래 연평균 10만여 명이 찾으면서 안보명소로 자리 잡았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4일에도 육군수도군단, 육군부사관학교 등 여러 부대의 단체관람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부분 군 장병이 찾을 것이라는 짐작과 달리 실제 민·군 관람객 비율은 반반이라고 수호관 관계자는 설명했다. 주로 학교, 보훈단체 등에서 찾아오지만 개인 자격으로 관람을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방문 당일에도 연인으로 보이는 민간인 커플이 장병들 사이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NLL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었다.

 

 

서해수호관을 방문한 육군 장병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서해수호관을 방문한 육군 장병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서해수호관에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제2연평해전에서 산화한 고(故) 조천형 상사의 조카가 쓴 편지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고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전사자들의 유품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전시물로는 윤두호·윤영하 부자의 엇갈린 비극을 소개한 당시 신문 스크랩을 꼽을 수 있다. 해군사관학교 18기 출신인 아버지 윤두호 옹은 1970년 6월 29일 북한 무장 간첩선을 나포한 공으로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32년 뒤 같은 날 아들 윤영하 소령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는 내용이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스크랩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를 기리는 서해수호관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서해수호관 옆 안보공원은 충무동산·통일동산과 천안함 전시시설로 구성돼 있다. 충무동산에는 제1연평해전 전승비와 제2연평해전 전적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2함대 함정들은 출항 전 이곳을 방문, 선배 전우들의 헌신을 기리고 완벽한 임무 수행을 다지는 전통이 있다. 이날도 출항을 앞둔 을지문덕함 장병들이 놓고 간 화환이 눈에 띄었다.

천안함 전시시설의 핵심인 천안함 선체는 보는 이들에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게 한다. 늘어지고 가닥가닥 흩어진 케이블, 찌그러진 철판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손상 부위는 그날의 참상을 상상하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어뢰 피격으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연돌·디미스트, 가스터빈실, 마스트는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한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비교적 온전한 함정 상부는 당시 수병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 중갑판 통로에 붙은 ‘천안함’이란 한글 함명패는 일부 칠이 떨어져 나갔음에도 그곳을 지나쳤을 수많은 승조원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곳곳에 붙은 금연 표지판도 현실감각을 더한다.

서해를 지키다가 스러져 간 영웅들의 정신은 2함대 장병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함대는 전입 신병이 꼭 서해수호관과 안보공원에서 서해수호 의지를 다지도록 하고 있다. 대전함 갑판병 강지원 상병은 처음 서해수호관을 찾았던 그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전시된 임진왜란 당시 화포.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전시된 임진왜란 당시 화포.



“입대 전 영화나 보도를 봐서 해전에 관해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 직접 전사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확인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특히 전사자 소지품 가운데 편지가 있었는데, 한 자 한 자 읽으며 가족의 소중함과 서해수호 의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몸담았던 2함대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해양수호 의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강 상병은 실제 바다로 나가면 서해수호관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또 다른 막막함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서해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입니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자부심이 충만해집니다. 2함대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서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선배들의 노고를 이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출항한다면 우리의 바다가 오늘도 평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참수리 고속정 기관장으로 복무 중인 황수혁 중위는 주기적으로 서해수호관과 안보공원을 방문, 호국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고속정 부장이었던 삼촌의 영향으로 조국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는 그도 공교롭게 참수리 고속정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서해는 최전방입니다. 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죠. 특히 참수리 고속정은 ‘창끝부대 중의 창끝부대’입니다. 먼저 선배들이 거둔 승리처럼 반드시 서해를 수호하겠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임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황 중위는 2함대에서 복무하면서 NLL을 지키는 일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두려움을 이겨 낼 용기를 가지기 위해 늘 선배들을 떠올린다고 덧붙였다.

“제1·2연평해전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그 상황에서 과연 맞서 싸우고 이겨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가 내린 답은 ‘반드시 해내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다’입니다. 이런 각오를 다잡기 위해 서해수호관을 찾고 헌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를 위한 의식과 같은 헌화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에서 시작해 전사자들로 이어지는 평택의 서해수호 전통은 앞으로도 영속될 것으로 보인다. 2함대 정훈실 공보과장 김장준 중위는 “서해수호관과 안보공원은 해군의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며 “정신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단순히 다양한 사례를 교육받는 게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서해수호관·안보공원은 의미가 큰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배 전우의 희생을 잊지 않고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고민하는 장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글=맹수열/사진=한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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