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렵다지만 명품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에르메스,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의 가방은 매년 가격이 인상되며 이제는 수천만 원을 훌쩍 넘겼다. 명품 시계 롤렉스의 인기 모델은 중고 가격이 정가보다 높게 형성되기도 한다. 명품 가격이 치솟다 보니 오래된 명품을 고쳐 다시 사용하는 ‘리폼’도 성행한다. 낡은 가방을 해체해 지갑이나 작은 가방으로 다시 만드는 방식인데,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수선업체도 적지 않고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이 리폼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큰 관심을 모았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서울 압구정의 한 수선업자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수선업자는 고객이 맡긴 루이비통 가방을 해체한 뒤 원단과 금속 부품을 이용해 다른 형태의 가방이나 지갑으로 제작해 주고 수선비를 받았다. 이에 루이비통 측은 이러한 행위가 상표권을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루이비통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수선업자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최근 내려진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고객이 가방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리폼을 맡겼고, 수선업자는 이를 가공해 다시 고객에게 돌려준 것에 불과하다면 원칙적으로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물건을 고쳐 쓰는 행위까지 상표권으로 제한하긴 어렵다는 취지다.
여론은 대체로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일부 언론에선 이번 판결을 두고 ‘리폼업체의 완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판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결론만은 아니다.
대법원은 동시에 리폼업체가 책임질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도 제시했다. 겉으로는 개인의 수선을 돕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론 리폼업자가 제작과정을 주도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자신의 상품처럼 시장에서 판매·유통되는 경우라면 상표권 침해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폼 제품의 디자인·형태를 누가 결정했는지, 제작된 제품의 수량은 어느 정도인지, 수선업자가 받은 돈이 단순한 수선비인지 아니면 사실상 판매수익에 가까운지, 사용된 재료의 출처는 무엇인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사정이 존재한다는 점의 증명 책임은 상표권자인 기업 측에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명품 가방을 리폼해 쓰다가 나중에 중고마켓에서 판매하는 경우는 어떨까.
대법원의 판단 기준에 따르면 이런 경우 상표권 침해가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리폼이 개인적 사용을 위한 것이었고, 리폼업자가 단순히 수선 서비스를 제공했을 뿐이라면 이는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신의 물건을 쓰다가 처분하는 행위까지 상표권으로 제한하긴 어렵다는 결론이다.
다만 처음부터 판매를 목적으로 리폼 제품을 만들어 중고마켓에서 판다면 상표권 침해가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명품 가격이 비쌀수록 그 물건을 오래 고쳐 쓰려는 소비자의 수요도 커진다. 어머니가 쓰던 명품 가방을 리폼해 딸이 사용하고, 아버지의 시계를 아들이 물려받아 착용하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이번 루이비통 사건처럼 개인이 자신의 물건을 고쳐 쓰는 건 허용되지만, 새로운 명품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순간 법적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치솟는 명품 가격과 함께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내 물건을 고쳐 쓰는 자유’가 침해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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