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K팝 공식에 선 긋다…새 시대 팝 향해 선 넘다

입력 2026. 03. 09   15:55
업데이트 2026. 03. 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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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를 만나다 >>블랙핑크가 넘어선 한계선…팝을 끌어안은 K팝

3년 9개월 만에 새 EP ‘데드라인’ 내고 컴백…38개 지역 1위
멤버 각자 개별활동 통해 시장서 이미 고유 영역 구축
곡 구조·방송 프로모션·팬덤 소비문화 등 K팝 문법 벗어난 그룹
글로벌 프로듀서와 협업·관객 열광할 송가로 브랜드 파워 완성

블랙핑크의 새 미니앨범 ‘데드라인’ 콘셉트 포토. 사진=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의 새 미니앨범 ‘데드라인’ 콘셉트 포토. 사진=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가 노를 움켜쥔다. 바다를 건너고, 용암의 대지를 지나고, 하늘을 넘어 우주에 도달한다. 고대 4원소를 상징하는 행성을 거쳐 세계의 경계를 넘는 멤버들은 미지의 영역으로 힘차게 노를 저어 간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황금양털을 찾아 떠났던 아르고호의 원정, 혹은 지하세계 스틱스강을 지키며 망자의 넋을 실어 나르는 카론의 이야기가 겹친다. 돌아올 수 없는 길, 한계를 돌파하는 여정을 은유하는 뮤직비디오는 비장한 마이너 스케일의 주선율 속에 곡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과격한 베이스의 음악과 함께 더는 과거와 같을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하얀 모래가 폭발하며 등장하는 단어는 ‘고(GO)’. 시간이 다하는 순간, 새로운 서사도 만들어진다.

3년 9개월 만에 새로운 EP ‘데드라인(DEADLINE)’을 발표하며 귀환을 알린 블랙핑크다. YG엔터테인먼트와 개별 계약을 종료하고 각자 솔로활동을 펼치고 난 뒤 그룹활동을 이행하기 위한 결과물이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데드라인’ 투어의 여운을 이어 가는 작품은 발매 첫날 146만 장 판매량을 기록하며 K팝 걸그룹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고, 38개 지역 아이튠즈 1위 성적을 올렸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대흥행과 함께 한국의 전통문화 유산을 K팝과 연결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블랙핑크의 복귀를 기념, 그룹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금동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국보급 유물 8점의 오디오 도슨트를 한국어·영어·태국어로 녹음하고 박물관 전체를 핑크빛 조명으로 물들였다. 명실상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화제를 낳고 있는 걸그룹이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간극을 발견한다. 유튜브 뮤직 한국 차트 1위에 오른 ‘고’는 키키의 ‘404’나 아이브의 ‘뱅뱅(Bang Bang)’에 비하면 국내에서의 인기를 쉽게 체감하기 어렵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어떤 방송 출연이나 유튜브 예능과 같은 국내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신곡의 공식 안무나 라이브, 연습 영상조차 찾아볼 수 없다. K팝 그룹에 요구되는 역할을 단 하나도 수행하지 않는 ‘데드라인’에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팬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블랙핑크는 K팝의 문법을 따를 필요가 없고, 따르고 싶지도 않은 그룹이 됐기 때문이다.

‘데드라인’의 구성부터 우리는 앨범의 새로운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DJ이자 프로듀서 디플로가 선사한 하드스타일 ‘뛰어’부터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의 거대한 대폭발을 연상케 하는 곡으로 예상을 비켜 갔는데, 전체 앨범의 지향점 역시 다르다. 별도의 인트로 없이 로제의 목소리로 출발하는 타이틀곡 ‘고’는 2010년대 중후반 ‘소프트 EDM’으로 불렸던 팝 지향의 일렉트로닉 장르를 중심으로 멤버들의 각 파트와 비트 드롭에 큰 비중을 두고 있어 무대 중심의 K팝 문법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우주적 상상력을 담은 거대한 음악으로 한 시대를 평정했던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프런트맨 크리스 마틴과 레이디 가가의 지난해 부활을 이끈 프로듀서 서쿳의 작품이다.

다른 수록곡은 블랙핑크 팬들이라면 익숙할 ‘블랙핑크 클래식’의 세계적인 변주다. ‘프리티 새비지(Pretty Savage)’ ‘셧 다운(Shut Down)’을 연상케 하는 공격적인 트랩곡 ‘미 앤드 마이(Me and My)’와 1980년대 뉴웨이브 록 사운드로 ‘러브식 걸즈(Lovesick Girls)’의 스케일을 키운 ‘챔피언(Champion)’은 히트메이커 프로듀서 닥터 루크가 창작을 맡았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퍽보이(Fxxkboy)’는 ‘스테이(Stay)’ ‘아니길’의 여운을 이어 가는 블랙핑크의 어쿠스틱 공식이다. 다만 노래 가사에 한국어를 찾아볼 수 없고, 그 정서가 한국이 아닌 세계 보편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트랙을 순서대로 들으면 그 자체로 스타디움 투어의 세트리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멤버 각자가 서구 팝시장에 개별적으로 편입된 상황에서 고유의 음악세계까지 펼친 가운데 블랙핑크의 단체활동이 K팝의 문법을 따르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중요한 점은 K팝이 팝의 대기권을 뚫고 진입할 때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버릴지에 있다. 블랙핑크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진공공간에 과감히 내버린 것은 K팝의 관습이다. 방송 프로모션, K팝의 곡 구조, K팝의 팬덤 소비문화와 시스템을 포기한다. 대신 가져간 것은 수만 명의 관객을 열광하게 할 수 있는 송가, 글로벌 프로듀서들과의 협업, 이를 통해 완성하는 블랙핑크의 브랜드 파워다.

미국의 대표 공영방송인 NPR의 셸든 피어스는 ‘데드라인’ 비평에서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서구 확장의 개척그룹’이라고 지정하며, 서구의 사건의 지평선을 향해 나아간 블랙핑크가 ‘정복자의 야심’과 ‘본거지에 대한 의무’ 사이의 균형을 넘어 서구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는 평가를 남겼다. 사실을 뒤집어 볼 필요가 있다. K팝이 팝을 모방하거나 문법을 의식해 진출하거나 도전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 수명을 다한 팝의 황금기를 만들었던 히트메이커와 팝스타의 공식이 K팝이란 새로운 영토 내에서 다시금 작동하고 있는 편입에 가깝다.

팝의 히트메이커들은 더는 작동하지 않는, 혹은 작동할 무대를 잃어버린 서구시장 대신 대규모 팬덤과 글로벌 투어가 가능한 K팝이란 그릇 안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쓰고자 한다. 블랙핑크와 더불어 호화 프로덕션으로 화제를 모은 BTS의 새 앨범 ‘아리랑’의 트랙리스트만 봐도 이 같은 흐름은 분명해진다. 진입과 진출의 프레임으로 K팝을 읽는 서구 비평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변한 것은 K팝이 아니라 서구 팝시장의 생태계인데 말이다.

어디까지가 팝이고, 어디까지가 K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K팝다움’의 논의도 식상하다. 팝의 중력이 영미권을 넘어 새로운 세력으로 쏠리는 가운데 K팝의 대기권을 뚫고 나가는 블랙핑크의 빈자리에 남겨진 질문은 그런 사소한 게 아니다. 검증된 공식과 지지층을 바탕으로 새 시대의 팝을 만들고자 하는 K팝의 현재, 그것이 블랙핑크가 이미 넘어선 한계선이다.

 

<br>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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