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예술>> 모던 유니폼
검은 슈트, 흰 셔츠, 짙은 색 니트, 트렌치코트 등은 오늘날 우리 옷장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이런 의상조합을 거의 매일 착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패션업계에선 이런 복장이나 패션코드를 ‘모던 유니폼(Modern uniform)’이라 부른다.
군 보급체계·산업화 등으로 군복 규격화
이 패션코드의 뿌리는 국가 조직과 군대 보급 체계, 산업화된 생산 방식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프랑스 국민공회는 대규모 징병을 실시했다. 국가는 조달 체계를 통해 병사 복장을 생산, 공급했다. 군대는 병사가 착용해야 할 복장 규격을 문서로 제시했다. ‘보병 코트는 짙은 남색으로 제작한다. 단추는 두 줄로 달고 황동을 사용한다. 어깨에는 견장을 붙인다. 재단 길이와 소매 폭은 지정 치수를 따른다.’ 군복은 개인 취향에 맡긴 복장이 아니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자 각국 군대는 비슷한 방식으로 복장 규정을 세웠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전투에서 프랑스 보병은 남색 코트와 흰 바지를 입고 전열을 맞췄다. 영국 보병은 붉은 코트와 검은 샤코(원통·원추 또는 역원추형의 높은 깃털 술이 앞에 달린 군모)를 착용했다. 프로이센 군대는 높은 깃의 짙은 청색 코트를 채택했고, 러시아 군대는 황동단추가 달린 녹색 코트를 규정했다. 각국 지휘부는 색과 형태로 병종을 구분하고 부대를 식별했다. 전장은 규격화된 복장이 집단으로 움직이는 런웨이(runway)였다.
파리와 런던에서 상인은 군복 원단을 대량으로 공급했고, 군수 부대는 재단 패턴을 통일하고 병사 치수를 숫자로 기록했다. 재단사는 같은 설계로 코트를 반복 생산했으며 동일한 복장은 병력 이동과 보급 속도를 높였다. 유니폼은 병사를 통제하는 장치이면서 전쟁에서 효율을 끌어올리는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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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의 규격 복장, 남성 일상복으로 변모
군복 규격화가 이뤄지고 전쟁 후 군복 재고가 일상복으로 보급되면서 1800년 무렵 런던 세인트제임스 거리에는 테일러숍이 줄지어 들어섰다. 재단사는 검은 울 원단을 재단대에 펼치고 어깨선과 허리선을 분필로 표시했다. 다림질한 코트는 가슴선을 평평하게 눌렀고, 단추는 일정 간격으로 달았다. 라펠은 넓지 않게 꺾었다. 재단사는 장식 대신 선과 비례를 기준으로 코트를 만들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댄디즘의 창시자 조지 브라이언 브루멜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자수 코트와 레이스 장식을 최대한 절제한 짙은 색 코트와 흰 셔츠, 단정한 넥타이를 조합한 패션을 선보였다. 이 양식을 눈여겨본 재단사들은 이를 새로운 남성복 기준으로 삼았다. 브루멜이 선보인 복식은 도시 사회에서 빠르게 유행했다. 상인과 관료는 같은 색 코트와 바지를 입고 거리와 사무 공간을 오갔다. 검은 슈트는 특정 직업 복장이 아니었다. 어디서든 통용되는 분위기 있는 복장이었다. 군복에서 시작한 규격 복장이 바야흐로 도시 남성 일상복으로 변모한 시기였다.183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 도시에는 재봉 공장과 원단 창고가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재봉사는 패턴 재킷과 바지를 반복 생산했고, 상인은 백화점과 우편 주문 카탈로그로 넓은 지역에 판매했다. 공장은 치수 표준을 만들고 같은 설계의 옷을 대량 공급했다. 도시의 사무공간은 이 시기 기성복을 받아들였다. 뉴욕의 상점 브룩스 브러더스는 1849년 기성복 슈트를 판매했다. 상인과 사무직 종사자는 같은 재단 재킷과 바지를 반복 구매했다.
이로써 표준 사이즈와 반복 구매가 도시의 복장 기준을 만들게 됐다.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 영국 육군보급국이 배포한 장교 외투착용모범규정 문서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트렌치코트, 방수 개버딘 원단, 허리 벨트, 어깨 견장’ 런던에 소재한 외투 제조사 버버리(Burberry)는 토머스 버버리가 개발한 개버딘 원단을 사용해 이 외투를 생산했다. 이렇게 생산된 트렌치코트는 참호 장교에게 지급됐다. 장교는 지도와 권총을 넣기 위해 깊은 포켓과 금속 D링을 사용했다. 전쟁이 끝난 1918년 이후 이 외투는 도시 거리로 풀려나왔다. 전직 장교와 공무원은 같은 외투를 그대로 출근복으로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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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사무실 복장도 조직 규칙으로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많은 기업이 사무실을 단일한 규정으로 운영했다. 1950년대 뉴욕 월가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은 어두운 슈트와 흰 셔츠, 넥타이를 착용했다. 당시 인사부 문서에는 ‘재킷은 짙은 색 울 원단, 셔츠는 흰색, 넥타이는 단색’ 같은 문장이 자주 보인다.
이제 대부분 도시 노동자의 일터가 된 사무실에서의 복장은 개인 취향이 아니라 조직 운영 규칙이었다. 이 수요는 패션 시장을 움직였다. 브룩스 브러더스는 버튼다운 셔츠와 슈트 영역에서 앞서며 모던 유니폼의 강자로 떠올랐다. 랄프 로렌과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70년대 이후 오피스룩을 시장에 내놓았다.
1990년대 유럽 패션계는 규율을 강조했다.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은 1996년 파리 컬렉션에서 검은 울 재킷과 직선 재단 바지를 선보였다. 그는 장식 단추를 줄이고 어깨선과 라펠 각도를 단순하게 설계했다. 영국 디자이너 마거릿 하웰은 1994년 런던 컬렉션에서 흰 셔츠와 짙은 색 울 코트를 중심으로 한 복장을 제시했다. 이 두 디자이너는 실루엣, 색, 소재를 제한해 일정한 복장 규칙을 만들었다.
2000년대 후 반복 구매 구조가 시장 확대
2000년대 이후 브랜드는 이런 복장을 판매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브랜드는 같은 셔츠와 재킷을 시즌 구분 없이 생산했다. 매장 진열대에는 기본 재킷, 면 셔츠, 검은 팬츠 같은 조합이 반복 디스플레이됐다. 소비자는 같은 옷을 구매하고 세탁한 뒤 다시 구매했다. 이러한 반복 구매 구조가 모던 유니폼 시장을 확대했다. 198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야나이 다다시가 설립한 유니클로는 표준 사이즈 티셔츠와 다운 재킷을 대량 생산해 공급했다.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장 투이투가 창립한 아페쎄(A.P.C.)는 면 데님과 단순 재단 재킷을 선보였다. 1997년부터 공식적인 파트너십을 시작한 크리스토프 르메르와 사라 린은 넓은 칼라 코트와 큰 포켓 셔츠를 설계했다.
특히 이 세 브랜드는 같은 구조의 옷을 반복 생산하며 모던 유니폼 시장을 더욱 발전시켰다. 산업화 이후 각 시대는 자신을 모던(modern)으로 갱신해 패션에 새겨왔다. 모던이 갱신되는 한 모던 유니폼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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