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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값… 포성 크기 아닌 방향을 읽어라

입력 2026. 03. 09   16:36
업데이트 2026. 03. 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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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경제 이슈>> 미·이란 충돌…숫자로 읽는 지정학적 리스크 

중동 긴장 고조될 때 들썩이는 유가
환율 17년 만에 1500원 넘어서기도
금융시장 반응, 과거 양상과는 달라
금값·주식시장 비교적 제한적 조정
환율·유가 동시 상승은 경제에 부담
무역수지·물가 압박 ‘악순환’ 우려도

이란이 호르쿠즈해협 봉쇄를 선언해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조선들이 지난 3일 아랍에미리트(UAE) 푸자리아 해안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호르쿠즈해협 봉쇄를 선언해 국제유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유조선들이 지난 3일 아랍에미리트(UAE) 푸자리아 해안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 뉴스의 중심에는 언제나 전투기와 미사일, 드론 등이 등장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제 관심은 이란의 반격능력이 얼마나 유지될지에 쏠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다른 것을 먼저 보게 되는데 바로 ‘숫자’입니다. 포성이 울리기 전부터 유가와 환율, 금값, 주가지수 같은 숫자들은 이미 움직였고, 전쟁의 경제적 파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서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 충돌 직후 국제유가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공습 이전 배럴당 7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던 국제유가는 9일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시기 60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지수는 미국과 이란의 충돌 이후 급락했습니다. 상승장에 올라타기 위해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섰던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했습니다.

이번 충돌에서 금융시장이 보이는 반응은 과거 전쟁 때와는 다소 다르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금값이 예상만큼 크게 뛰지 않았고, 주식시장 역시 비교적 제한적인 조정을 보였다는 분석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번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숫자들로 살펴볼 수 있을까요.

중동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숫자는 ‘유가’입니다. 중동은 세계 에너지 공급의 핵심 지역입니다. 특히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전략적 통로입니다. 하루 2000만~2100만 배럴의 원유가 이곳을 통과하죠.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석유의 대부분이 아시아로 향한다는 점입니다.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원유의 약 90% 가까이는 아시아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 등이 주요 수입국입니다. 이 때문에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은 유럽보다 아시아 경제에 더 직접적인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호르무즈해협은 사실상 봉쇄된 상태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이란이 보복 조치로 해협 봉쇄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금융시장에서는 봉쇄가 장기화하거나 군사 충돌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가 급등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이후 국제유가는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듯했지만 현재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영국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7.54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이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전인 지난달 27일 브렌트유 가격이 70달러 초반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큰 폭으로 상승한 상태입니다. 트레이딩 플랫폼 트라두의 니코스 차부라스 수석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장기전 가능성과 공급 차질 우려를 반영하면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유가가 오르면 그 다음 움직이는 숫자는 ‘환율’입니다. 최근 중동 긴장이 높아지면서 원·달러 환율 역시 상승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초 1300원 대 초반까지 내려왔던 환율은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한때 1500원을 넘어섰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은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7년 만입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은 과거와 달리 달러 유동성이 풍부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과도한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만, 지정학적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과거 중동 분쟁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유가 상승→달러 강세→원화 약세’라는 흐름입니다. 한국 경제 구조는 이 공식에 특히 민감한 편입니다.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이기 때문이죠.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한국은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원유 수입 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무역수지와 환율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주식시장 역시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지정학적 긴장이 커질 때마다 글로벌 자금은 위험자산 비중을 줄입니다.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한국 증시는 이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중동 정세가 혼란에 빠지자 국내 증시 역시 급락했습니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듯 외국인 매도 물량을 받아내던 개인투자자들은 연이은 하락에 순매수 규모를 크게 줄였고, 그 결과 지난 3일 이후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은 이틀 동안 1000조 원 이상 감소했습니다.

이와 관련,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전쟁은 금융시장에 일시적인 충격을 줬지만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장기적으로 훼손시키지는 못했다”며 “이번 하락 역시 단기 급등 이후 나타나는 기술적 조정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부 역시 대응에 나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적극 대응하고, 100조 원 규모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신속히 집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번 중동 위기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숫자는 ‘금값’이 있습니다. 국제 금 가격은 최근 트로이온스당 약 50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5400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고 수준까지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통상 전쟁이 발생하면 안전자산 수요로 금값이 급등하는 경우가 많아 미국·이란 충돌 이후 금가격 상승을 전망하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위기 상황에서 금 가격은 과거처럼 폭발적으로 상승하지는 않았는데요. 오히려 일시적으로 하락하며 5000달러 선이 위협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미국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금보다 달러와 미 국채를 더 강한 안전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금 가격이 크게 상승했던 점 역시 추가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경제에는 환율과 유가의 동시 상승이 가장 부담스러운 시나리오입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국제유가가 오르면 무역수지와 물가가 동시에 압박받고,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증시 역시 외국인 자금 이탈과 함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시장이 보여준 반응은 공포보다는 ‘조건부 경계’에 가까워 보입니다. 전쟁의 포성보다 숫자의 방향을 읽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원유 공급 차질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달러가 더 강해질 것인지’ ‘유가 상승이 물가와 금리를 다시 자극할 것인지’ 등의 질문과 관련된 숫자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필자 방영덕 기자는 매경AX에서 유통 및 산업 분야 취재를 맡고 있다. 소비 트렌드부터 굵직굵직한 산업 이슈 등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고 한다.
필자 방영덕 기자는 매경AX에서 유통 및 산업 분야 취재를 맡고 있다. 소비 트렌드부터 굵직굵직한 산업 이슈 등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 쉽게 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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