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공제선 이후

입력 2026. 03. 05   15:53
업데이트 2026. 03. 05   16:01
0 댓글

내 졸음을 길들여 주던 전기난로가

겨울 끝 냉기 속에 미열만 남기고 꺼풀거리는 한낮

손끝에서 풀린 의식이 소파 등받이로 기운다

하루를 접다 만 셔터처럼 반쯤 내려온 풍경

아직 닫히지 않은 빛이 방에 머문다

겨울의 기척이 창가에 걸린 햇살에 기대어

희미하게 이어지고

새들의 주소는 다시 시베리아로 옮겨가고

읽히지 못한 신문들은 우편함에서 날짜를 잃는다

막바지 졸음이 거실 모서리로 밀려나

낮은 가구 그림자에 접힌다

봄은 계절의 공제선에서

겨울과 몇 무리의 새들을 지우고

눈 녹은 자리마다 굳어 있던 말들을 풀어 둔다

꽃샘바람이 발음 풀린 골배질을 스치고

투명해진 창에 겹쳐 드는 봄빛

메마른 세계의 모서리에 부싯돌을 튕기면

작은 불씨 하나

나는 여기에 있다

<시 감상>

시인이 설정한 계절의 공제선을 얼핏 보면 “희미하게 이어”져 있는 듯하다. 봄은 그 공제선 너머의 먼 시원(始原)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것인가. 그래서 봄이 오는 풍경은 아득하고 아련한 것인가. 어쩌면 우리네 무의식의 심연(深淵)에서 숨죽이고 있던 무슨 열망의 기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인이 주목하는 계절의 공제선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봄이 오는 풍경은 움츠려 있던 감각의 소생과 현실감이 톺아 보인다.

이를테면 차츰 밀려나는 전기난로며 읽지 못한 신문들의 자리를 대체하는 “눈 녹은 자리마다 굳어 있던 말들”은 몸으로 경험하는 감각적인 언어의 재생을 환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하여 “꽃샘바람이 발음 풀린 골배질을” 해도 헤치고 나아가는 배처럼 뜻밖의 역경에도 견뎌 내며 “작은 불씨 하나”를 지켜 낼 수 있는 현실적인 존재임을 표상(表象)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이 그려 보여 주는 봄이 오는 풍경은 한 시대의 고난과 극복을 단단한 나이테로 다져 가는 성숙한 존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매년 제때가 되면 오는 것이 봄이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우리가 ‘새’ 자를 붙이며 봄을 기다리는 것은 이런 기대감 때문은 아닐는지.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김영미 시인
김영미 시인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