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나가고 있다. 일본에는 수많은 재일교포가 산다. 오사카 쓰루하시 시장에는 김치를 사러 많은 재일교포가 몰려든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에 마치 한국 재래시장에 온 듯한 기분도 든다.
마늘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과거 일본인은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춧가루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백김치라는 걸 일본인도 먹었지만, 그건 김치가 아니라 샐러드에 가까웠다. 판매 단위도 몇백 g 정도에 불과한 소량 묶음이었다. 20년 전부터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가 일본의 유명 백화점에서도 판매됐다. 묶음 단위도 ㎏ 이상으로 커졌다. 쓰루하시 시장에 일본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먹는 냄새 나는 진짜 김치를 사기 위해서다.
음식은 신체와 직결되므로 지역, 풍토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 신체 이동이 소극적이었던 과거에는 이웃 마을만 건너가도 전혀 다른 재료와 맛의 음식이 펼쳐졌다. 미술을 일러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세계 보편성의 언어라고 한다. 외국어를 몰라도 외국의 그림은 이해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보편성의 언어인 미술에 지역성을 강조했었다. 미술대학에 서양화과, 한국화과가 있었다. 전국의 미술대학마다 있었던 한국화과는 이제 서너 개 대학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한국화의 정통성과 차별성을 지나치게 고집하다 보니 시대 흐름에 밀린 탓이다. 한국화는 안료가 중심인 채색화보다 먹이 중심인 수묵화가 대세를 이뤘다. 수묵화는 검은 먹 안에 청, 적, 황, 백, 흑 등의 색이 다 들어 있다는 동양화의 미학을 주장해 왔다. 그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검은색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어떤 먹은 미묘하게 붉은빛 혹은 푸른빛을 낸다고 한다. 이 차이는 고도의 경지에 이른 일부 전문가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중은 그걸 느낄 수 없다. 한국화는 대중과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전통적인 재료에 집착하다 보니 표현의 확산은 한계에 봉착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불붙은 한국의 국제화에 반비례해 한국화는 내리막길을 걸으며 30년 정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국화를 전공한 젊은 작가들이 드디어 애매모호한 먹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붉은빛이면 붉은색, 푸른빛이면 푸른색을 분명하게 쓴다. 캔버스, 아크릴 컬러 등 주변 장르의 재료를 주저 없이 수용했다. ‘먹’이라는 재료의 정신성에 얽매여 있던 한국화는 이제 사라졌다. 최근 한국화 전공의 훌륭한 젊은 작가가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화는 새로운 약진의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는 처음부터 오늘날의 모습으로 존재한 음식이 아니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 들어왔다.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간 건 18세기 후반이다. 그전에는 김치의 보관성을 위해 고추 대신 산초를 썼다. 속이 꽉 채워진 결구배추는 19세기 후반에 도입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배추김치, 즉 결구배추에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는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다. 불과 100년 전의 일이다. 그전엔 배추가 아닌 무로, 고추가 아닌 산초로 동치미 같은 김치를 담갔다.
요즘 쓰루하시 시장에선 연근, 미즈나 등으로 만든 일본식 김치가 팔리고 있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은 무와 배추 대신 당근으로 만든 김치, ‘마르코프차’를 창안했다. 세상 만물은 유전한다. 김치든 그림이든 세상의 흐름과 현장에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아 새로운 전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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