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군 대위로 전역하기까지 삶의 나침반은 언제나 ‘군인 집안’이란 자부심이었습니다. 대령으로 예편하신 할아버지와 중위로 복무하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인의 길을 걷는 것을 당연한 숙명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 뿌리의 시작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일제강점기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던 독립유공자 증조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조기를 가슴에 달고 미군 중대장으로서 부대원을 이끌면서도 제 가문의 헌신이 시작된 대한민국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특히 미군 대위 시절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서 근무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운명과도 같았습니다. 영국인인 아내는 저보다 더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사랑했고, 그런 아내의 지지는 23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국적을 회복하고 병역의 의무를 결심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미 연방정부 공무원의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서른일곱이란 나이에 입대를 결정했을 때 주변의 만류도 많았습니다. 처음엔 베테랑 군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현역으로 복무하고자 병무청을 상대로 약식재판까지 하며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비록 제도의 벽에 부딪혀 보충역으로 복무하게 됐지만 실망하진 않았습니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이어져 온 4대째의 충성은 계급이나 복무 형태에 좌우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훈련소에서 한참 어린 전우들과 땀 흘리며 대한민국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깨끗한 장교 정복 대신 땀과 먼지가 묻은 훈련복을 입고 있지만, 마음가짐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합니다.
이름 모를 산야에서 독립을 외쳤던 증조할아버지, 평생을 군에 몸담으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누구에게나 헌신에 대한 고생을 인정하고 박수 쳐 주는 나라입니다.
미 연방정부에서 배운 ‘국가의 책임’이란 가치를 이제 대한민국에서 실천하고자 합니다. 서른일곱의 사회복무요원, 누군가에게는 늦깎이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제야 비로소 가문의 전통을 잇고 진정한 내 집으로 돌아와 바치는 첫 번째 거수경례입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될 앞으로의 시간 동안 4대째 이어지는 군인 가문의 자긍심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 작은 헌신이 대한민국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길 소망하며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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