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기자 생활을 마감하는 회사 선배와 조촐한 고별 오찬을 나눴다. 여러 이야기 도중 그가 퇴직을 며칠 앞둔 지금도 평소와 다름없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러모로 마음이 싱숭생숭할 텐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자문하다가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생각했다.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로 유명하다.
다른 이가 한 말이 와전됐다는 설도 있지만, 어찌 됐든 메시지의 강렬함과 더불어 알 듯 말 듯한 심오함이 수수께끼 같은 숙제를 남긴다. 하루 뒤면 온 세상이 사라지는데 그깟 사과나무라니…. 종말론적 상황을 가정한다면 법과 도덕을 벗어난 일탈적 행위로 소멸의 공포와 허무를 달래려는 사람이 아무래도 많을 것 같다. 스피노자가 몇 년 뒤에나 쓸모 있을 사과나무를 언급한 것은 인간의 그런 일반적 속성과 극명하게 대비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여기서 사과나무는 인간이 1차원적 본성을 극복하고 더 높은 정신세계로 고양하기 위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주어진 책무를 다한다는 직업적 소명의식 또는 내일의 걱정 때문에 오늘을 망치기보다 현재를 즐기자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는 다르다.
추정컨대 인생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 자체가 아니라 삶의 참된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게 스피노자의 뜻이리라. 이는 하루하루의 꾸준한 일상과 성찰로 이뤄진다. 만약 그러던 중 갑자기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원래 인생이란 예측 불가이기에 매 순간을 잘 살아 내는 게 아름다운 끝맺음의 방법이다. 지혜로운 자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그런 인생을 완성하는 데 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는 “아침에 도(道)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논어』)는 공자의 말과도 겹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이 문장은 진리 탐구의 치열함과 희열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해 줬다. 공자에게 득도는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 존재의 완성이다.
스피노자의 마지막 하루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생물학적 본성을 넘어서는 위대한 행동을 통해 죽음이라는 절대적 운명도 담담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예상보다 훨씬 일찍 우리 곁에 다가온 인공지능(AI) 시대는 과거에도 몇 차례 경험했던 세기말적 현상 이상의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진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에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말 것이란 묵시론적 공포와 함께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직업의 종말’이라는 전혀 낯선 세계가 오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지만 누구도 확실한 답은 내놓지 못한다.
스피노자는 지금 어떤 사과나무를 심을 것인가. 그는 아마 불확실한 미래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리하는 게 먼저라고 훈수할 듯하다. 스피노자의 세계관에선 인간 이성이나 AI 기술도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이기에 이성의 확장인 AI는 자연 질서의 또 다른 전개다. 21세기 우리의 사과나무는 AI 시대에 더 값어치를 발휘할 인문주의가 아닐까 싶다.
AI는 군사 분야에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게 틀림없다. 내색하진 않지만 군 내부의 불안감이 없을 수 없다. 영화 ‘탑건’의 극 중 주인공 매버릭의 말이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란다. 그는 유인 전투기의 시대는 끝났다는 상관에게 이렇게 응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