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함께 하는 전쟁사>> 독일의 프랑스 침공과 드뷔시의 애국적 음악
1914년 독일 1차 세계대전 일으키자
낙관에서 절망과 공포에 빠진 프랑스
조프르 총사령관 ‘피란 아닌 반격’ 호소
돌아온 파리 시민 ‘마른의 기적’ 창조
전쟁 당시 암 수술로 쇠약해진 드뷔시
1차 세계대전 관련 작품 여러 곡 남겨
가장 프랑스적인 색채에 애국심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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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초반, 전쟁에 임하는 독일의 계획은 서쪽의 프랑스를 최대한 빨리 굴복시킨 후 동쪽의 러시아 방면에 집중한다는 ‘슐리펜 계획’에 기초한 개념이었다. ‘슐리펜 계획’은 1905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슐리펜이 중심이 돼 발전시킨 전쟁계획으로, 프랑스의 주 방어선을 회피하고 북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주력한다는 개념이다. 반면 프랑스는 독일이 북부 지역으로 주력을 지향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중동부 지역인 알자스·로렌 지역으로 주력을 집중했다.
프랑스 북부로 향한 독일의 주력, 그리고 영국의 참전
독일은 1914년 8월 2일, 룩셈부르크를 침공하고 다음 날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8월 4일 영국은 1839년 체결한 런던조약에 따라 벨기에의 중립 상태를 유지하라는 최후통첩을 했지만 독일이 이를 무시했다. 결국 같은 날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영국군은 8월 23일 벨기에 몽스(Mons)에서 독일군과 첫 번째 교전을 했다. 후속제대는 프랑스로 증원했다. 아울러 강력한 해군을 동원해 북해를 봉쇄, 독일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집중했다.
벨기에의 저항은 생각보다 강했다. 중립국임에도 독일 침공을 예상하고 독일과의 접경지역인 동부 리에주에 12개의 지하 요새를 구축해 방어함으로써 독일군의 진격을 1주일 이상 지연시켰다. 이는 연합군이 시간을 갖고 방어를 준비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 필자도 2024년 현장을 방문했는데, 지하에 대규모 진지를 구축하고 식당, 샤워장, 포병진지, 병원 등 제반 시설을 구비한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대우회 기동은 초반에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8월 7일 프랑스로 진격해 9월에는 파리 북방 50㎞까지 진출했다. 독일군은 하루평균 약 30~40㎞를 기동했다. 병력은 도보로 이동하고, 군수물자와 식량, 탄약, 포병은 대부분 마차를 이용했다. 독일에서 벨기에 국경 및 전선까지의 후속지원은 철도를 이용했다. 그러나 독일군이 마른강에 도달하자 보급선이 길어져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오랜 기동으로 병사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에 막힌 오스트리아군의 공세
발칸반도 상황도 독일군에 유리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세르비아를 침공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고전을 거듭했다. 체르전투와 콜루바라전투에서 패하면서 엄청난 전투 손실과 함께 상당 기간 발칸반도에 묶여 있는 신세가 됐다. 무엇보다 세르비아군은 실전경험이 있었고, 라도미르 푸트니크라는 유명한 명장이 있었다.
푸트니크는 국경선에서 무리하게 오스트리아군과 맞서기보다는 내륙 깊숙이 유인해 병참선을 늘어뜨린 후 반격하는 ‘기동방어’를 택했고, 이는 적중했다. 또 산악이 많은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군을 산악지역으로 유인해 기동을 지연시키고 화포의 지원을 약화시킨 뒤 측방에서 공격함으로써 오스트리아군은 제대로 공세를 유지할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군이 러시아 전선에도 병력을 운용함에 따라 전투력도 분산됐다.
러시아를 전쟁에서 이탈시킨 탄넨베르크 전투
개전 초 있던 탄넨베르크전투는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현재의 폴란드 북동부 바르미아마주리주에 속한 스테바르크라는 마을에서 벌어졌다. 독일은 서부전선에 집중하느라 8군만 동부전선에 투입했고 러시아는 1·2군을 투입했는데, 규모로 보면 2배 정도 러시아가 우세했다. 하지만 독일군은 철도로 이동해 여유가 있는 반면 러시아군은 도보로 이동해 지쳐 있었다. 그래도 규모의 차이가 워낙 커 러시아가 전력 면에서 유리한 상황이었다.
러시아의 파벨 폰 렌넨캄프 1군 사령관과 알렉산드르 삼소노프 2군 사령관은 과거 러·일 전쟁에서부터의 악연으로 인해 반목하고 불신하는 사이여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러·일 전쟁 당시 렌넨캄프는 풍천전투에서 삼소노프의 퇴로를 지원하지 않고 철수해버려 악감정과 불신이 계속되고 있었다. 독일군과 접촉한 삼소노프는 렌넨캄프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독일 8군은 러시아 2군을 포위해 거의 전멸시켰다. 삼소노프는 결국 자살을 선택했고, 이어진 마수리안 호수전투에서도 패하면서 러시아는 사실상 전면 후퇴해 국경 밖으로 밀려났다. 후에 렌넨캄프와 그의 상관도 각각 해임돼 군적을 박탈당했다. 두 사령관의 불화로 약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군, 참호전의 늪에 빠지다
독일군이 벨기에전투에서 지체하는 사이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마른강 일대를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맞서고 있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제대로 진가를 발휘한 기관총은 병력의 기동을 제한시켰다. 참호 밖으로 나오면 여지없이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거기에 지친 독일군은 새로운 병력의 보충 없이는 진출이 불가능했다. 결국 양측은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해 길고도 참혹한 참호전, 소모전으로 빠져들었다.
독일이 전쟁을 개시했을 때만 해도 프랑스의 분위기는 매우 낙관적이었고, 보불전쟁 때 빼앗겼던 알자스·로렌 지역을 되찾자는 애국적 열망이 컸다. 그러나 독일이 마른강까지 도달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프랑스 사회는 절망과 패배의 공포가 커졌고, 피란 가는 행렬이 늘어났다. 그래서 마른강에서의 반격은 매우 중요했다. 당시 프랑스의 조제프 조프르 총사령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패배한다”고 호소했고, 파리 시민들은 택시까지 동원해 병력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이를 흔히 ‘마른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클로드 드뷔시, ‘마른의 기적’을 소나타에 담아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당시 파리에 있었다. ‘달빛’ ‘아라베스크’ ‘목신의 오후 전주곡’ ‘녹턴’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곡가다. 그는 1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음악을 여러 곡 남겼다. 1914년에는 독일의 벨기에 침공에 항의하며 벨기에 왕과 군인을 위한 ‘베르쇠즈 에로이크’를 썼고, 1915년에는 전사한 친구들을 기리는 2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흑과 백으로’를 작곡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암 수술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프랑스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1915년부터 6곡의 소나타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첼로를 위한 소나타, L. 135’ ‘플루트·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L. 137’ ‘바이올린 소나타, L. 140’ 3곡을 완성하고 1918년 끝내 숨졌다. 드뷔시는 프랑스 색채가 잘 드러나는 곡을 만들려고 애썼는데 이는 아마도 전쟁 중 생겨난 애국심 때문인 듯싶다. 그가 숨을 거두던 당시 파리에는 독일군의 포탄이 여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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