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양 K-pop 스타를 만나다

정확히 꿰뚫었다, 핑크 블러드 공식

입력 2026. 02. 27   15:56
업데이트 2026. 03. 0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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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스타를 만나다 - ‘루드!’로 돌아온 걸그룹 하츠투하츠 

인위적 서사 없이 심각하지 않아 친구 같은 그룹
‘집중’ ‘몰입’ 키워드로 자기 확신 선명하게 드러내
정극보다 미니시리즈 같은 매력으로 어필
나다움 강조한 노랫말·키치한 사운드의 신곡 ‘루드!’
고전적 공식 따르면서도 부담 없이 즐기는 K팝 매력 만끽

걸그룹 하츠투하츠. 사진=SM엔터테인먼트
걸그룹 하츠투하츠. 사진=SM엔터테인먼트



SNS 속 하트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하는 공장, 알고 보니 이곳은 20세기의 운영체제로 옮긴 고전적인 비디오게임 속 세계였다. 작은 창을 넘어 도착한 바탕화면은 더 어지럽다. 윈도XP 시기로 기억되는 프루티거 에어로 스타일의 레트로한 배경화면 위에 다양한 운영체제 디자인 기반의 폴더와 파일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웹 1.0의 레트로 UI(User Interface)와 SNS 인터페이스를 뒤섞은 디지털 세계 속 소녀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맘대로 오가며 ‘나다움’의 가치를 발견한다. 거창한 미래주의 선언이나 막연한 레트로, 가치 판단이나 걱정은 없다. “누가 뭐래도 평범한 건 지루해” “나다울 때 누구보다 눈부셔”라는 클리셰로 짜인 노랫말도 큰 고민 없이 가져온 것 같아 재미있다. 수다스러움을 무례함으로 정의하며 “꽤나 뻔뻔한 애티튜드”라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걸그룹. 이 시대 감각을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하츠투하츠의 신곡 ‘루드(RUDE)!’다.

데뷔 1주년을 맞은 SM엔터테인먼트의 신인그룹은 심각하지 않아 더욱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차분하고 몽환적인 신스 팝 ‘더 체이스(The Chase)’부터 사실 독특한 데가 있었다. 대형 기획사의 신인이자 에스파 이후 5년 만에 데뷔하는 걸그룹이라는 높은 관심에도 그룹은 외부 시선에 관심이 없다는 듯 수수께끼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낯선 세계를 천천히 담았다. 진취적인 태도로 조곤조곤 노래하는 이들의 K팝은 세계를 호령하는 걸크러시 선언이나 ‘자기애’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었다. 세상에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고, 애초에 관심이 없어 주변 시선이 개입할 틈이 없는 독특한 진공상태가 하츠투하츠의 차별점이었다.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강해 보여야 하고, 자유롭고자 자유로운 흉내를 내는 인위적 서사와는 달랐다. 혹은 과거의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공식조차 없었다.

하츠투하츠에게는 오로지 집중뿐이다. 나에게 집중했던 에너지를 상대를 향한 경청과 무한한 애정으로 옮긴 ‘스타일(Style)’은 아주 섬세하다. 역설적으로 그 상대를 향해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그룹은 자기확신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네 스타일은 다 맞아. 그게 너라서 더 좋아”라는 고백에서 일말의 주저함이나 망설임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주제의식이 ‘SM 르네상스’로 불렸던 2010년대의 경쾌한 딥 하우스 스타일의 기승전결 뚜렷한 전자음악으로 구현되며 더욱 선명하게 매력이 드러난다.

그 집요한 태도, 눈앞에 놓인 무언가에 몰두하는 습관을 한층 입체적으로 그려 낸 곡이 바로 ‘포커스(Focus)’다. 뚝 끊기는 피아노 건반 터치로 시작하는 곡은 빈티지한 피아노 리프의 딥 하우스 위에서 카메라의 작동 원리를 가사로 옮겨 집중하는 대상만 남기고 나머지 세상을 아예 뒤로 밀어 버린다. 사랑스러운 그룹 이름과 친근한 이미지에도 하츠투하츠가 서늘하고 몽환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이 있다면 그룹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바로 그 ‘몰입’의 경험을 무서울 정도로 집요하게 그리고 있어서다. 에프엑스와 레드벨벳, ‘광야’ 없는 에스파로부터 증명한 SM엔터테인먼트의 ‘핑크 블러드’가 하츠투하츠의 심장에도 흐른다.

‘루드!’는 그 초상의 다음 페이지다. ‘더 체이스’가 안을 향해 탐색했고 ‘스타일’이 옆 사람에게 집중했으며 ‘포커스’가 그 정서를 날카롭게 벼려 냈다면 ‘루드!’는 세상을 향해 몸을 돌린다. ‘루드!’의 뮤직비디오에는 하츠투하츠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재치 있게 녹아 있다. 멤버들이 자체 제작 콘텐츠와 실시간 소통 플랫폼에서 내비치는 캐릭터가 직접적 대사나 행동으로 이어지고, 각자를 상징하는 이미지와 강점이 곡 후반부 스텔라의 영어 내레이션처럼 실제 노래와 안무로 구현돼 있다. 평범한 건 지루하고, 꾸밈없을수록 낫고, 나다울 때 가장 빛난다고 믿는다는 노랫말과 더불어 ‘자연스러움’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테크 하우스 기반에 플럭 사운드를 섞어 키치하게 만든 음악은 더욱 그 심각하지 않은 태도를 강화한다. 고양이가 잘못 누른 SNS상 ‘좋아요’ 때문에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해프닝이 있는데도 멤버들은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온통 하트를 찢어 버리고 나서도 ‘난 아예 너에게 관심 없었다’는 태도로 가볍게 단체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할 뿐이다. ‘루드!’를 가벼운 한 박자 쉬어 가기로 보면 또 재밌는 지점이 있다. 집중하고 몰입하는 탓에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허둥지둥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다. 진지함보다 쉬어 가기 같은, 정극보다 미니시리즈의 매력이 하츠투하츠에 있다.

K팝은 오랫동안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해 왔다. 해독해야 하는 세계관, 뮤직비디오에 숨겨진 의미, 음악을 직접 만들지 않는 멤버가 나서 그들을 완성하는 음악과 춤에 더해 자신의 주관과 지향까지 밝혀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건 아무리 곡 구조를 단순하게 하고 꽂히는 후렴을 만든다고 풀리는 피로가 아니다. 뉴진스 이후 등장하는 걸그룹들이 몰입과 집중이란 키워드를 바탕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만들고,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과 소통하며 K팝의 ‘입문 난도’를 낮추고자 하는 원인이다.

하츠투하츠는 그 공식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아이돌에게 세계를 구하는 슈퍼 히어로를 요구하던 시대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가능할 수도 없었다. 그저 웃으며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친구, 그렇지만 닿기 어려운 아우라로 동경하게 되는 아이들을 소비하는 게 산업 논리 가운데 자주 잊게 되는 K팝의 본질이다.

하츠투하츠가 SM엔터테인먼트의 레거시를 자유롭게 활용하며 굉장히 고전적인 공식을 따르는데도 완전히 다른 그룹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중과 그룹이 서로를 계속 궁금해하게 만들고, 이러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음악과 콘텐츠로 함께 성장한다. 어떤 음악, 어떤 춤, 어떤 노래를 하더라도 낯설지 않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어른이 없는 세상’ 속 하츠투하츠를 통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K팝의 매력을 오랜만에 다시 만끽하고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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