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Ⅲ
아프리카-에티오피아 ④
이탈리아 점령·학살에 무장투쟁 지속
2차 대전 영국 전략 변화로 독립 지원
英 식민지 병사 희생 아래 자유 탈환
아프리카 복잡한 국제관계 반영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있는 시립공동묘지 한쪽엔 영국군 묘역이 차지하고 있다. 현지에선 통상 ‘영국군 묘지(British War Cemetery)’로 불린다. 비석을 보니 영국 식민국가 출신 장병들도 함께 안장돼 있다. 이 전사자 묘역은 아프리카의 복잡한 국제관계를 보여 주는 전쟁역사 유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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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묘역에서 본 에티오피아 독립전쟁
영국군 묘역 안내판에 적힌 에티오피아의 전쟁사는 이렇다. 1936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할 때 영국은 군사 개입을 자제했다. 이탈리아는 점령지에서 가혹한 보복정치를 했다. 1937년 2월 19일 아디스아바바에서 이탈리아 총독 암살 미수사건이 있었고, 이탈리아군과 민병대는 3일간에 걸쳐 민간인 3만여 명을 학살했다. 에티오피아의 무장투쟁이 계속됐지만 어떤 나라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전략이 급변했다. 1940년 6월 이탈리아가 독일 편으로 참전했다. 영국은 수에즈·홍해·인도 항로 보호를 위해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를 제거해야만 했다. 이때 영국 방위선의 핵심 요충지로 에티오피아가 떠올랐다. 영국은 망명 중인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합법적인 국가원수로 인정했다. 철저하게 국익을 위한 외교정책의 변화였다. 이때부터 영국은 에티오피아 저항군에 적극적인 군사지원을 했다.
다국적 연합군이 아디스아바바 해방
1940년대 에티오피아 인접국인 수단, 케냐, 탄자니아, 이집트는 영국 식민지였다. 영국군은 에티오피아 진격을 위해 특수부대 ‘기디언 포스(Gideon Force)’를 창설했다. 1700여 명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장교·부사관은 영국군, 병사들은 수단·에티오피아인으로 충원했다. 임무는 이탈리아군 보급선 차단, 독립군 봉기 유도였다. 1941년 초 에티오피아 북쪽에서 ‘기디언 포스’와 에티오피아 독립군이, 남쪽에서 영국군·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군 기갑부대가 치고 들어왔다. 에티오피아 전역에선 일제히 독립군이 봉기했다. 1941년 5월 5일 드디어 아디스아바바는 이탈리아로부터 해방됐다. 영국군 묘역에는 영국, 인도, 남아공, 수단, 탄자니아, 케냐, 나이지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병사도 일부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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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부지에 건립된 아디스아바바 국립대
아디스아바바 국립대는 과거 왕궁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 중반 셀라시에 황제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왕궁에 국립대를 건립하도록 했다. 그는 “권력은 혈통이 아니라 지식에서 나온다”며 에티오피아 미래를 교육에 맡겼다. 이 대학에는 미국 존 F. 케네디 정부가 지원해 건립한 기념도서관도 있다. 이 도서관은 1960년대 에티오피아·미국의 외교관계 상징이다.
캠퍼스 내 왕궁박물관은 1974년 군사쿠데타 이전 에티오피아 역사를 잘 보여 준다. 황제 집무실, 역사적 사건, 황실 문양 등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특히 황실 문양은 2마리 사자가 앞발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모습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상징적으로 사나운 사자들이 황제 경호에 동원됐다. 외국 귀빈이 왕궁을 방문하면 황제는 사자를 동반한 채 접견했다. 가끔 사자를 어루만지면서 귀빈과 대화를 나눴다. 겁에 질린 방문객은 눈치를 살피며 외교적 양보를 해야만 했다. 박물관 해설사에게 몇 번이고 되물어도 황제와 사자가 친근하게 산책하는 사진을 내보이며 역사적 사실임을 강조한다. 다소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왕궁에서 사자를 사육한 것은 확실한 듯했다.
‘VVIP 택시’ 기사의 황당한 요금 논리
숙소에서 아디스아바바 국립대까지 호출택시를 이용했다. 이런 택시는 요금을 사전에 알 수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청년 운전사의 친절함에 캠퍼스를 돌아본 뒤 다시 그 자동차를 이용하기로 약속했다.
대학도서관, 왕궁박물관, 교내공원, 학생식당을 돌아본 뒤 대학 정문으로 나갔다. 약속대로 그 차로 숙소에 도착하니 오전 요금의 3배를 요구했다. “정문에서 장시간 대기한 대가와 VVIP 택시의 웃돈이 포함됐다”고 한다. 황당한 논리였다.
자유롭게 영업하다가 정해진 시간에 만나기로 한 선의의 약속을 오해한 모양이다. 운전사는 시 당국이 발급한 VVIP 인증표시판까지 제시했다. 근거 없는 얘기다. 선량해 보였던 청년과 헤어지며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받은 전자비자
다음 답사지 케냐로 입국하기 위해 전자여행허가(ETA) 비자를 신청했다. 케냐는 2024년부터 기존 비자제도를 폐지하고 ETA를 의무화했다. 케냐 이민국에서 발급하는 ETA는 반드시 온라인으로만 등록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신청했지만 복잡한 절차 중간에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했다. 나이로비행 항공권까지 예매했는데, 입국비자가 문제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대사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ETA는 이민국 소관이어서 도와줄 수 없단다. 대신 대사관 직원이 스마트폰 신청을 도왔지만, 마찬가지로 진행이 불가능했다.
한인식당 사장에게 하소연하니 아프리카에서 수십년 동안 무역업을 하고 있는 교민이 달려왔다. 다양한 현지 경험을 가진 그도 2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겨우 신청서를 냈다.
문제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출국시간이 다가오는데 비자 승인 메일이 도착하지 않았다. 수차례 대사관과 통화한 뒤 항공기 이륙 4시간 전에야 겨우 승인문자를 받았다. 열악한 인터넷 환경과 미흡한 행정으로 외국인이 흔히 겪는 일이라고 교민은 말했다.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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