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민·군 복합항 10주년’ 화합의 돛 올리다
이지스구축함부터 대형 크루즈선까지
함께 드나드는 안보 거점이자 관광 관문
해녀 출신 어르신이 진료받으러 오고
지역 학생들은 해군에게 생존수영 배워
기동함대, 의료지원·교류 노력 ‘결실’
제주 남단 강정해안에 자리한 제주 민·군 복합항이 26일 준공 10주년을 맞았다. 1993년 소요 결정과 2010년 착공을 거쳐 2016년 준공과 함께 본격 운용에 들어간 지 정확히 10년이 흐른 것. 갈등 속에 출발했던 기지는 이제 국가 해양안보의 거점이자 지역 상생협력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글=조수연/사진=조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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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향한 해양안보의 전초기지
25일 찾은 제주 민·군 복합항 해군기동함대 군항에는 정조대왕함, 충무공이순신함, 서애류성룡함이 묵묵히 서 있었다. 3㎞ 앞 범섬과 구름이 걸린 한라산 중턱, 제주월드컵경기장이 한 시야에 들어왔다. 군항과 마을이 같은 풍경 안에 있었다.
최남단 해군기지지만, 지도를 거꾸로 놓으면 대양으로 뻗어 나가는 출발점이다. 49만㎡ 규모의 항만은 동·서해 전방 해역으로 신속 전개가 가능하면서, 남방 해역 해상교통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을 해상수송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남방 해역은 국가 경제의 생명선과도 같다. 제주 민·군 복합항은 그 항로를 지키는 핵심 기지다.
이곳을 모항으로 창설된 해군기동함대 역시 지역과 함께하는 전략기동전력으로 자리 잡았다. 기동함대는 동·서·남해를 관할하는 해역함대와 달리, 특정 해역에 고정되지 않는다. 임무에 따라 필요한 해역으로 전개하는 전략기동부대다.
정조대왕급(8200톤), 세종대왕급(7600톤), 충무공이순신급(4400톤) 구축함 10척과 소양급·천지급 군수지원함 4척이 핵심 전력이다. 이지스구축함은 적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대탄도미사일작전 수행능력을 갖췄다. 장거리 대공·대함·대잠 타격능력으로 해양 우세를 확보하는 상징적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준공 이후 10년. 한때 거센 갈등이 있던 제주 민·군 복합항은 이제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다. 군함과 크루즈선이 함께 드나들며, 군항 기능과 함께 관광 관문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특히 2019년 3월 영국의 초대형 크루즈선 퀸메리 2호가 최초 기항 이후 입항 사례가 늘며 크루즈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중단됐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다. 2023년 26회였던 크루즈 기항은 2024년 138회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200회 이상 기항이 예정돼 있다. 이를 통해 제주를 찾는 크루즈 관광객은 약 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군함과 대형 크루즈선이 같은 항만을 공유하는 구조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복합 항만 모델이다. 안보 거점과 관광 인프라가 결합된 운영 체계가 10년간 안정적으로 운영·정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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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지원·영외중식…군이 먼저 손 내밀다
민·군 복합항으로서 지난 10년의 성과에는 민·군 상생·협력을 위한 기동함대의 노력이 컸다. 이날 찾은 기동함대 기지전대 의무대는 중급병원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안과·치과·정신과·이비인후과·내과·정형외과·한방과·외과를 비롯해 응급실, 잠수의무실, 물리치료실, 신체검사실, 약국을 갖췄다.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이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의료지원이 진행된다.
진료실 안에는 군복을 입은 의료진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드시는 약 있으세요? 어디 아프세요?” 의료진은 지난 진료 기록을 확인하며 혈압 수치와 복용 약을 짚었다. “지난번에 혈압 수치가 높았는데 오늘은 좋아지셨네요.” 세심한 설명과 꼼꼼한 진료가 이어졌다. 환자 손에 약을 건네며 복용 방법을 한 번 더 설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역에는 해녀 출신 어르신도 많아 안과와 정형외과 진료를 함께 받으며 건강을 점검한다. “한 달에 한 번 병원 오는 걸 기다린다”는 말도 나온다. 일부 주민은 “일반 병원보다 훨씬 더 좋다”고 전했다.
고영춘 강정마을 노인회장은 “10년 동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며 “예전에는 갈등이 있었는데 이런 의료지원처럼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덕분에 많이 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일상 속 접점이다. 공무직 근로자 일부를 지역주민으로 채용해 함께 근무하고, 김영관복합문화센터 편의시설을 주민과 공유하며 일상적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해난구조대원들이 교관으로 나서 전투수영과 생존수영을 교육하고 있다.
‘일강정의 날’ 행사, 친선 체육대회, 어린이날 부대 개방, 호국음악회 등 교류도 정례적으로 펼치고 있다. 전문 잠수요원이 참여하는 수중 정화활동은 어촌계와의 협력 사례로 꼽힌다. 격주 금요일은 ‘영외 중식의 날’로 정해 장병들이 마을 식당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지역 마을회장이 “처음 약속했던 것들을 꾸준히 지켜줘 고맙다”고 언급한 일은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제주 민·군 복합항은 전략기동전력의 모항이자 남방 해역을 지키는 전진기지, 그리고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복합 항만으로 다음 1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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