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인공지능(AI)의 파고가 가장 먼저, 가장 치열하게 도달할 곳은 다름 아닌 우리 군의 전장이다. 하지만 AI는 공짜로 생각하지 않으며 로봇은 공짜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구나 전장은 모든 전력 인프라가 파괴된 현장이다. 결국 미래 전장의 승패는 지속 가능한 전력(Electric Power) 확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군대는 석유라는 화석 연료를 태워 기동력을 얻고 있지만 미래 우리 군이 도입할 첨단 무기들은 엄청난 양의 전기를 잡아먹는 ‘에너지 포식자’다. 당장 우리 군이 도입 중인 드론봇 전투단을 생각해 보자. 수백 대의 드론이 군집을 이뤄 작전을 수행하려면 이를 실시간으로 제어할 지상 통제소의 서버와 통신 장비가 24시간 가동돼야 한다. 드론 한 대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대규모 드론 부대를 야전에서 지속해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전력량은 중소 규모 마을의 전기 소비량을 훌쩍 넘어선다.
로봇체계로 넘어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인간의 험지 보행을 돕는 착용형 로봇이나 물자를 수송하는 다목적 무인 차량은 고출력 모터와 실시간 지형 인식을 위한 고성능 프로세서를 탑재한다. 이들이 전장에서 한 시간 동안 기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지속적 운영을 위해서는 고속 충전체계 구축도 필수다. 특히 최근 국방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레이저 무기(LSO)는 그 자체가 거대한 전력 덩어리다. 빛의 속도로 적의 드론이나 미사일을 격추하는 레이저 무기가 단 한 번의 빔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순간 전력은 압도적이다. 안정적인 고출력 전력 공급원이 없다면 레이저 무기는 무용지물이다.
여기에 모든 무기체계의 두뇌 역할을 하는 ‘국방 AI’의 전력 소모까지 더해진다. 피아 식별, 타격 우선순위 결정, 최적의 보급 경로 산출 등 지능형 작전 통제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거대한 데이터센터급 연산 능력이 필요하다. 전장 전반에 걸쳐 ‘전기’는 단순한 보급품이 아니라 부대 생존과 직결되는 ‘혈액’ 그 자체가 된 것이다.
현재 우리의 야전 환경은 이러한 ‘전기 대전환’을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전기 공급은 주로 디젤 발전차량에 의존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소음은 적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산악 지형이 많은 한반도 전술 환경에서 수많은 전기 구동 무기를 어떻게 충전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없다면 첨단 국방은 요원해진다. 최근 미군은 전장에서 기동 가능한 1.5㎿급 소규모 원전발전 모듈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고, 곧 현장 실증테스트에 들어간다고 알려졌다. 한번 가동하면 약 3년간 독립부대가 사용하는 전기에너지를 외부 지원 없이 제공하는 만큼 전투력과 생존력 확보에 절대적인 전력이 될 것이다.
우리 군에도 야전에서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고 저장해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전술형 스마트 그리드’ 구축은 무기 도입만큼이나 시급한 과제다. 우리 군이 지향하는 ‘AI 과학기술 강군’의 꿈은 전장에서 잠들지 않는 전력망을 확보할 때 비로소 현실이 될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첨단 무기 개발 기술만큼이나 매우 훌륭한 발전 및 전기 활용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력발전, 변전 변압,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거의 전 분야에서 세계 최고 경쟁력을 뽐내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 군도 미래 전장의 에너지 확보를 위한 다각적 연구를 수행 중이다. 기름의 시대를 넘어 전력 시대로 향하는 거대한 전환점에서 대한민국 군이 에너지 안보를 선점해 글로벌 K방산의 초격차를 완성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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