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이 문장을 보고 특정 멜로디가 떠오르고 ‘情(정)’이라는 글자와 초코 과자가 눈에 그려진다면? 그건 당신에게 1989년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있다는 증거다. 당시 유명했던 광고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관계와 소통에 목말라 있던 대중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렸다. 그 초코 과자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정을 나누는 매개’란 상징도 됐다.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극 중 북한군 중사로 나오는 배우 송강호가 한입 베어 물며 “우리 공화국에서는 왜 이런 걸 못 만드는지 몰라”라고 하자 국군 병사인 배우 이병헌이 ‘초코파이’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며 귀순을 권유하는 것도 기억에 남는 유명한 장면이다(실제 2017년 11월 JSA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가 총상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병원의 의료진에게 “초코파이를 먹고 싶다”고 말한 게 알려져 다시금 화제가 된 바도 있다).
20년이 훌쩍 지난 사이 해당 초코 과자는 러시아에서도 ‘국민간식’으로 불리며 세대를 아우르는 스낵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2003년 러시아 법인 설립 이후 해당 기업의 지난해 누적 매출이 2조 원을 돌파했을 것이라고 하니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는 우리 제품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다. 달콤한 초코 과자의 맛이 그럴 것이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비교적 잘 통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 가족과의 대화가 그렇다. 눈빛 하나, 분위기 하나로 모든 게 통한다. 이를 ‘고맥락적 소통’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저맥락적 소통’은 맥락보다 언어 자체의 명확성과 구조를 중시한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제대로 얘기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워 오해를 낳기 쉽다. 한마디로 ‘눈치껏’ 알아주기를 바랄 수 없는 소통방식이다.
공적 말하기는 이러한 저맥락적 소통을 기본으로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같은 조직에 있다고 해도 동일한 맥락을 공유한다는 전제를 내려놓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공적인 말을 강하게 만든다. 듣는 이를 고려해 언어를 다듬어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그 말은 비로소 설득력이 생기고 신뢰를 쌓는다.
‘불통’의 순간은 대부분 한쪽이 너무 고맥락적 소통방식을 고집할 때 생긴다. 상사가 자신의 경험과 권위에만 의존해 부하 직원에게 암묵적으로 이해를 강요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거 있잖아. 저번에 그거 할 때 내가 얘기했던 거, 이번엔 그냥 그때처럼 하면 돼.”
이런 식의 지시를 하고는 오히려 상대방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다”며 폄하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귀’가 빨리 트이기를 원할수록 듣는 이를 탓하기보다 본인의 말을 살피고 소통방식을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찌 보면 귀찮고 게으른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 그를 상대방이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사실 무척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다.
피곤할 수 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서로를 위해 조금만 더 ‘제대로’ 말해 주자.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을 많이 느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잘 말해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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