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연탄길이 필요하다

입력 2026. 02. 05   14:52
업데이트 2026. 02. 0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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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인즉슨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생소한 환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람들 사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우리를 포함한 지구촌 전역에 감동의 물결을 몰고 온 까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끈이 바로 인정이요, 우정이요, 사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 줬다는 데 있었다.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인종이 다르다고, 우리 이야기가 아니라고 감동까지 가로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돌아보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많다. 연일 우울한 소식이 차고 넘치더라도 체념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 건 우리에겐 여전히 가족과 이웃, 친구가 있어서다. 나를 위해 마음을 써 주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나로 인해 즐거워하는 이웃이 있는 세상은 살아볼 만한 인생의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무렵, 대학으로 가기 전 출판 편집자로 있으면서 거의 마지막으로 만든 책이 『연탄길』(이철환 지음)이었다. 그 내용이 바로 우리 이웃이 벌이는 사랑과 인생의 향연 자체였기에 무명의 필자가 가져온 원고였음에도 출간을 결정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 찡한 순간을 떠올려 주는 추억의 재생장치이자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무수한 사랑을 고스란히 모아 놓은 소중한 인생보고서처럼 여겨졌다.

‘소중한 사람 앞에 놓아 주고 싶은 책’으로 기억해도 좋을 책다운 책을 오랜만에 만들 수 있다는 기쁨도 느꼈다. 제목을 정하면서 “어린 시절, 내가 사는 산동네에 수북이 눈이 쌓이면 사람들은 저마다 연탄재를 손에 들고 대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보다 더 하얗게 사랑을 깔아 놓았습니다. 가난으로 움츠린 산동네 사람들이 어깨를 활짝 펴고 아침을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이라는 저자의 말에 주목했다. 왜 하필 이 시점에 ‘연탄길’일까. 그런 의문은 책을 집어 드는 순간 따스한 햇살에 눈 녹듯이 사라지리라는 믿음으로 정한 게 ‘연탄길’이란 제목이었다.

저자가 밝힌 대로 ‘연탄길’은 바로 그런 ‘사랑’의 징표였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어디 있으려고”라는 생각으로 비탄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어둠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혹은 나에게 고통을 안겨 준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 또한 누군가에게 고통을 뿌렸을 수도 있음’을 일깨워 줌으로써 더불어 사는 세상의 지혜를 선사하기 위한 장치가 ‘연탄길’이었기 때문이다.

4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연탄길』은 한 편 한 편이 남이 아닌 나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만큼 실제적이며 낯익은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글과 함께 이야기를 오롯이 드러내는 소박한 그림이 어울려 잔잔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끊임없이 쏟아 낸다. “달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가 결국 ‘나’임을 알게 된다. 달동네는 선명하게 추억으로 자리 잡은 우리 고향이어서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빛이 될 순 없지만 더 짙은 어둠이 돼 다른 이들을 빛내 준 사람들의 이야기, 부족함 때문에 오히려 넉넉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지금보다 더 절실했던 시절이 있었을까.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물러나고 있지만 둘러보면 빙판길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서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연탄길이 많이 놓이면 좋겠다.

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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