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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음 조국에…제2의 김풍익 중령을 향해

입력 2026. 02. 05   14:53
업데이트 2026. 02. 0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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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보냈던 2025년의 마무리로 우리 지원대 북카페 책을 정리하며 한 해를 돌아봤다. 매일 지내는 공간이지만 더욱 특별했다. 20년째가 된 나의 군 복무. 그간의 기억을 그러모아 정리하는 마음으로 책을 하나씩 꽂아 넣던 중 손이 잠시 멈췄다.

『내 젊음 조국에-김풍익 중령 일대기』가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 포병 병과의 신화적 인물이며 구국의 영웅 김풍익 육군중령의 이야기였다.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의 용기와 지혜, 희생과 헌신, 탁월한 지도력과 리더십이 나의 나약해진 군인정신과 매너리즘을 자극했다.

1950년 5월 1일, 당시 김풍익 소령은 육군포병학교 교관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한 달여 뒤 6·25전쟁이 발발하며 그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이 가르치던 부대원들을 이끌고 최전방으로 향했지만 한국군이 보유한 구형 105㎜ M3 야포의 화력으로는 북한군의 강력한 전차를 막기엔 부족했다. 아무리 공격해도 적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그는 나라의 위태로운 운명 앞에 목숨을 걸고 적을 격파하기 위해 결심한다. “더 가까이 접근해 직접 조준 사격한다.” 김풍익 소령은 부대원들과 함께 무거운 대포를 끌고 적의 코앞까지 전진했다.

1950년 6월 26일 아침, 북한군의 선두 전차가 눈앞 50m까지 다가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직접 포를 조준하며 외쳤다. “발사!” 첫 번째 포탄이 정확히 명중했다. 불길이 치솟았고, 적은 큰 피해를 봤다. 두 번째 포탄을 장전하려는 순간, 적의 반격이 날아왔다. 그 자리에서 김풍익 소령과 전우들은 전사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 얼마나 숭고한 죽음인가! 그의 전투는 6·25전쟁의 전환점이 됐다. 국군의 사기와 전투력에 큰 영향을 미쳤고,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강렬하게 남아 있다.

책장을 덮고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다.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동안 얼마나 무심히 살아왔던가.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니었다. 김풍익 중령과 같은 수많은 선배 전우의 피와 땀이 쌓여 만들어진 소중한 평화였다. 그의 이름과 정신은 지금도 K105A1 자주포의 별칭 ‘풍익’으로 명명돼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나의 군 복무 20년을 책과 함께 잘 정리하며 되새겼다. 지금 누리는 이 평화는 흔들림 없이 싸운 선배 전우, 그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해 군 복무를 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며 앞으로 꾸려 가야 할 군 생활이다. 2026년에는 아마 다른 군인이 돼 있을 것이다. 제2의 김풍익 중령을 꿈꾸는 군인 말이다.

한대연 상사 육군포병학교
한대연 상사 육군포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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